지방선거가 한창인 와중에 갑자기 수도권 언론에서 대형마트 입점규제와 의무휴업을 문제 삼는 기사들이 줄지어 게재돼 그 배경이 의심스러웠다.
기사 방향이 천편일률적으로 5년여 전부터 시작된 대형마트 규제가 전통시장 매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소비자의 불편만 가중시킨다는 내용이다.
잘 알다시피 ‘대형마트 규제법’은 지난 2013년 초 국회에서 통과된 법이다. 중소도시 곳곳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던 대형마트가 골목상권을 붕괴시키자 일요일을 포함한 공휴일 월 2회 의무휴업을 해야 하고, 점포를 개설할 때 주변상권영향평가서와 지역협력계획서를 지방자치단체에 제출하도록 등록요건을 강화한 내용이었다.
당시 신문을 들춰보니 당시 대기업인 대형마트들이 여러 채널을 통해 규제 수위를 완화시키는데 총력을 쏟은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상당수 수도권 언론과 국회의원들이 동원됐다.
그들은 대형마트가 일요일 휴업을 한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전통시장을 찾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농어민의 피해사례를 집중 부각시키며 영업규제에 대한 반대여론을 확산시키는데 주력했다.
대형마트들은 당시 수도권 언론을 마치 전단지처럼 활용하며 광고비를 뿌려댔다. 울지역 언론들은 5년 후인 지금도 똑 같은 논리로 지방자치단체 곳곳에서 문제 되고 있는 대형마트 입점을 옹호하고 의무휴업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5년 전이나 지금이나 수도권 주류언론이 대형마트 편을 들고 있을 때 대형마트로 인해 문을 닫은 수많은 자영업자와 전통시장 상인들은 울분을 삭이지 못한 채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대구시 수성구 한 전통시장에서 식육점을 운영하던 필자의 지인 얘기는 대형마트나 SSM(기업형 슈퍼마켓)이 어떻게 골목상권을 빈사상태로 내몰고 서민가정을 파괴하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오래 전 직장을 퇴직하고 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그 지인은 인근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평화스럽던 일상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대형마트가 문을 연 초기에는 여느 시장상인들처럼 단골손님이 많아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다. 가마솥에 곰탕도 끓여 팔고, 고기 품질도 좋아 고객들에게 신용도가 아주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루하루 지나가면서 고객들의 발길이 끊기기 시작했다. 그 후 매출이 가게를 지탱하지 못할 정도로 줄어들자 지인은 업종을 수입고기 전문점으로 바꿔보기도 했지만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다. 대형마트가 들어선지 6개월을 조금 넘게 버티다 결국 식육점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이 지인의 얘기처럼 대형마트 근처 전통시장에서 장사를 하다 똑 같이 생계를 잃은 가정은 한 둘이 아닐 것으로 짐작된다. 시민들이 대형마트를 주로 이용하는 이유는 편리하기도 하지만 미끼상품 때문인 경우가 많다.
대형마트 전단이나 신문광고를 보면 매일 이러한 미끼상품이 한두 개씩은 꼭 나와 있다. 상품 종류는 주로 주부들이 자주 구입해야 하는 생필품이다. 많은 사람이 경험하고 있지만 이러한 할인상품에 현혹돼 집 근처 슈퍼나 전통시장을 이용하지 않고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면 꼭 후회하게 된다.
가족을 배려하느라 당초 계획에 없던 음식까지 잔뜩 사오기 때문이다. 몇 천 원 아끼려다 몇 만 원을 충동 구매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똑같은 돈을 전통시장에서 쓰는 것하고 대형마트에서 쓰는 것하고는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천양지차(天壤之差)라는 점이다. 대형마트에서 쓰는 돈은 그 날 바로 은행을 통해 서울로 가 지역 자산을 그만큼 축내게 된다.
그러나 전통시장에서 쓰는 돈은 즉시 골목상권으로 되돌아 나와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며 지역에 머무르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영세 상인을 비롯한 서민들이 번 돈은 은행에 들어갈 여유도 없이 곧 바로 생계비로 쓰이기 때문이다. (동일문화 장학재단 협찬)
심충택
(언론인,대구경북언론인회 부회장)
경북대학 치과병원 상임감사
대구문화재단 이사
대구지방법원 조정위원
전)영남일보 편집국장,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