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환 작가- 대구출생 .대구성광고 졸업 .경북대 독문과 졸업 <주요저서>마음 중 단편 .대불(시집) .김대중 .한국전쟁 언저리 .금호강의 영혼(시집)
#매주 목요일 연재
지하세계 1
8. 1계단에서 14계단
36계단을 차례로 내려간다. 1계단을 들어서니 온 천지에 남녀가 가득하다. 어디서 오신 분들일까? 물어보지 않아도 모두들 세상을 떠난 망자들이다. 겉으로 보기엔 산사람과 다르지 않다. 펄렁이는 깃발에는 회색 쥐가 그려져 있다. 저쪽으로는 흰쥐가 휘날린다. 둥글둥글 모여 있는 언덕마다 숫자가 새겨 있다. 선사시대, 역사시대, 서기 1,500년대, 서기 2,000년대, 쥐띠 해에 태어났다가 이곳으로 올 때는 각기 시기가 달랐으므로 가슴팍에 죽은 날이 검은색, 황색, 흰색으로 적혀 있다. 한 눈에 나타나는 그림은 사람이 너무 많다. 인종도 흑․백․황인종이 뒤섞여 있다. 관심이 가는 곳은 아리따운 처녀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붉은 장미가 활짝 핀 들녘에 춤을 추고 있다. 한바탕 이리저리, 사뿐사뿐, 몸놀림을 하다가 쉬는 시간이 되자 ‘호떡집에 불이 난’ 듯하다. 가슴팍에 나타난 사망일자는 모두 같은 날이다. 연대는 오래 되었는데 들판에서 축제를 하던 중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 몽땅 이곳에 왔다는 설명이다. 같은 나이의 또래들이 모여서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날이었다. 고약하게도 그 절대자는 꽃다운 처녀들을 죽게 만들었다. 하루에 8시간은 꽃밭에서 춤을 춘다. 화관무, 포크댄스, 블레이크댄스, 캉캉, 탱고, 지르박, 고고, 디스코, 에어로빅, 강강술래, 승무, 부기부기, 차차차, 지화자, 탭댄스, 삼바, 처용무, 발레, 아이스댄싱, 싱크로나이즈, 스트립쇼, 나체춤, 배꼽춤, 코브라춤, 훌라춤, 바라춤, 블루스, 벨리댄스, 헤드뱅잉 등이다. 먼저 온 사람들로부터 예전 것들을 배우고 나중 오는 사람들은 새 것을 가르치고 일 년 내내 돌아가면서 내용이 바뀐다. 공간배경도 춤에 따라 바뀐다. 즐거운 디스코, 욕정을 일으키는 브루스도 8시간 내내 추어대면 싫증이 나고 고통스러워 두 시간으로 줄이고 일을 시켜달라고 아우성이다. 나체춤을 출 때는 구경꾼이 몽땅 사라져 버린다. 아무런 신이 나지 않는다. 아이스댄싱을 하면 갑자기 날씨가 더워져 얼음이 녹아 버린다. 다행히 하루일과가 즐겁게 정상적으로 끝나면 저녁시간에 모두 쥐가 되어 버린다. 시궁창으로, 곡간으로, 들녘으로 돌아다니다가 고양이가 나타나면 혼비백산 도망친다. 고양이가 잡아먹은 쥐들은 백 년이 가도 춤을 추지 못한다. 그는 생각한다. 1계단에 들어섰는데 오늘따라 지옥문이 되나? 그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상황이 돌변했다. 한쪽 구석에는 울부짖는 무리들이 있다. 그들은 제1․2지하국가에서 생매장을 당해 여기에 온 사람들이다. 가장 최근의 인물들이다. 그들도 가슴팍에 똑같은 날짜가 나타난다. 나이는 12년 차이씩 서로 달랐지만 똑같은 쥐 모양의 깃발에 모인다. 춤을 추는데 웃지 않고 눈물을 흩뿌리는 망나니의 칼춤을 추고 있다. 시퍼런 칼날이 휘휘 번득번득하는 옆에서는 젊은 남녀가 알몸으로 엉켜 붙어 브루스를 추고 있다. 피비린내의 포효와 간지러운 교태가 동시에 흘러나온다. 왈츠, 미뉴에트를 구경하면서 에어로빅의 음악이 섞이어 음악적 파괴로 인해 기분이 상한다. 그는 재빨리 이 저주의 땅을 벗어나려고 하는데 몸이 옴짝달싹도 않는다. 발버둥 칠수록 자꾸만 땅 밑으로 빠져든다. 다리가 빠지고, 몸뚱이가 요동도 못하고, 두 팔이 흙에 파묻힌다. 목까지 귀신이 옮아붙은 듯하다. 이제는 죽었구나 생각된다. 그의 앞에서는 맑은 물속에서 싱크로나이즈를 추고 있는 아리따운 두 처녀가 똑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점점 물줄기가 자기 앞으로 다가온다. 물이 그를 덮치자 멍한 상태에서 정신을 잃는다. 허여스름한 둥근 달이 점점 주황색으로 밝아지는데 손에 손을 잡은 여인들이 긴 댕기머리에 통치마를 입고 강강술래를 춘다. 달빛에 노닐던 무리들이 지나가고 흰 고깔을 쓰고 나비처럼 휘날리는 한 여인의 가냘픈 몸놀림이 캄캄한 밤에 오색등불의 절간 마당에서 쉼 없이 계속된다. 이마에 쪼르르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사이 다음 장면이 나온다. 동쪽바다 초가삼간 댓돌위에 놓인 신발은 무던히도 큰 남자 것이다. 소리죽여 한 사람이 몸을 흔들고 있다. 먼저 번에도 엉켜있는 다리숫자는 네 개였다. 느릿느릿 서글픈 처용의 손발놀림으로 달빛은 더욱 이지러진다. 날이 밝아 화창한 날씨에 머리에는 금빛으로 장식한 왕관을 쓰고 양쪽 손에는 까만색 부채를 폈다 오므렸다 하면서 옷자락을 펄럭펄럭 바람이 일게 한다. 차차로 정신이 들자 그는 광란의 삼바축제에 와 있다. 늘씬한 무희들이 싱싱하고 탄력적인 몸매를 여지없이 흔들어댄다. 음부를 가린 나비모양의 가리개가 흘러내려 나체가 되어도 알지 못한다. 머리에 꽂힌 공작 깃털이 뚝 떨어지자 정신이 번쩍 드는지 자기의 몸을 살핀다. 아무런 부끄럼도 나타내지 않고 태연스레 자리를 지키고 춤을 춘다. 망가진 왕관이 금방 만들려지지 않는다. 하얀 다리를 타고 엉덩이에 붙은 근육은 더욱 희게 햇볕에 반짝인다. 둔부 둘레의 0.8에 해당하는 허리둘레가 균형 잡힌 몸매를 느끼게 한다. 파란 눈에서는 사랑의 불빛이 십리를 비춘다. 노란 머리칼은 어깨에 흘러내려 찰랑찰랑 한다. 입을 헤벌쭉 벌리고 침을 삼키는 그는 자리를 뜨지 않고 뚫어지도록 여인을 쳐다본다. 무희들은 전신의 힘을 열 개의 발가락으로 지탱하고 있다. 굽이 높은 구두로 인해 뒤꿈치에는 무게중심이 실리지 않는다. 마라톤 선수들은 두 시간 이상을 열 개의 발가락을 사용하면서 뒤꿈치를 땅에 붙이면서 달린다. 심폐기능이 운동선수 못지않게 여인들도 흔들어 댄다. 허리가 굽은 여인은 한 사람도 없다. 피부가 쭈글쭈글 노인처럼 변한 사람도 없다. 무희들 중에는 백인과 인디언의 혼혈인 사람도 있다. 혼혈1세들은 대부분 우성인자로 인해 더욱 예쁜 경우가 많다. 잠깐 무희들의 얼굴이 스치고는 바람이 휘몰아치면서 발걸음이 바뀐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는 2계단에 내려선다. 논을 갈아엎는 누렁소가 느릿느릿 일을 한다. 숨을 푸푸 쏟아낸다. 언덕배기에는 한가롭게 풀을 뜯어먹고 있다. 깃발에는 암소머리를 그려 넣은 것과 뿔 달린 수소의 형상을 그려놓았다. 멀리 보이는 높은 산은 들소와 코뿔소의 뼈다귀가 쌓여서 석회암의 산이 되었다. 소꼬리에는 살아생전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다. 자기가 누구인가 알고 싶어 큰 눈을 멀뚱멀뚱 굴려보아도 읽기가 힘들다. 수많은 언어로 혼란이 생길 때 태양빛을 질소유리판을 통해 소꼬리를 비추면 당장 그곳에서 신분을 온갖 언어로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의 모습, 실체를 몰라 안달하다가도 질소유리판을 통하면 아쉬움이 해결된다. 너무 많이 남의 일을 알려고 자기의 꼬리를 질소유리판에 노출시킨 소들 중 수소는 뿔에 파르스름한 둥근 띠가 생겨났다. 암소는 젖에 빨가스름한 둥근 띠가 생겼다. 털렁털렁 젖이 넘칠 듯 무리지어 움직이는 암소들은 내리쬐는 태양빛을 풀밭에서 반사되는 각도에 따라 빨가스런 둥근 띠는 하늘에 재조명된다. 동글동글 작디작은 모양이 구름 속에 섞이기도 하고 타원으로 길게 그려지는 둥근 띠는 빛의 회절, 반사작용이 겹치면서 저 멀리 산등성이까지 자주색, 고동색, 주황색으로 바뀌면서 연달아 그림을 만든다. 아메리카 중부평원에 나지막이 전개되는 임신산에는 인디언 처녀의 한 맺힌 절규가 메아리친다. 카당카부족의 추장의 딸인 파타안 양은 아들, 딸을 낳고서 제 수명을 누리지 못하고 사망했다. 너무나 아름다운 용모를 지녔기에 그 모습이 천상에서 지상에 다시 내려와 그녀의 모습과 같은 산이 되었다. 누워 있는 부위 중 유방에 해당하는 붉은 빛이 빙그르르 도는 두 봉우리에는 끊임없이 둥근 원이 쌓여간다. 천 개의 둥그런 띠가 쌓여 가면 옆 봉우리에는 인디언 남자가 탄 백마의 발자국 소리가 삼박자로 다그닥다그닥 울린다. 다그닥다그닥 소리가 울려 퍼지면 누워 있던 임신산이 서서히 일어나게 되는데 거대한 산등성이가 여인의 모습으로 일어선다. 파르스름한 뿔을 맵시 있게 세운 수소들이 뽀얀 먼지를 평원에 일으키면서 임신산으로 달려든다. 산모퉁이 입구에서 더 이상 뛰어오르기 곤란해지면 수소 무리들은 더 이상 속력을 내지 않는다. 암소와 수소들이 들끓게 되고 반대편의 석회산에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초상화가 걸린다. 초상화 속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세블국의 총독의 남편을 향해 소리친다.
‘우리는 아메리카 인디언이다. 우리는 아메리카 인디언이다. 우리는 아메리카 인디언이다. 옥수수는 어디가고, 옥수수는 어디가고, 들소들은 보이지 않는다. 들소들은 보이지 않는다.’
소 무리들이 한바탕 지나고 나면 타바꼬를 입에 문 카우걸들이 다그닥다그닥 몽골리언 고동색 말을 타고 임신산으로 온다. 그녀들은 기억나지 않는 인디언 노래를 듣는다.
푸르른 엉덩이.
푸르른 엉덩이.
뒤뚱뒤뚱 아가야.
들리니.
들리니.
푸르른 엉덩이.
다그닥다그닥
색색의 말들이
아메리카 중부평원을 달린다.
들리니.
들리니.
뒤뚱뒤뚱 아가야.
들리니.
들리니.
푸르른 엉덩이.
다그닥다그닥
색색의 말들이
아메리카 중부평원을 달린다.
임신산의 여인이 일어서자 마주보는 석회산의 초상화 속의 인디언 남자와 두 사람의 검은 눈동자에서는 주루룩 눈물이 흘러 가느린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면서 아메리카 중부평원에 흩뿌린다. 옥수수 밭에 눈물이 흐른다. 알알이 맺힌 옥수수에는 인디언들의 살점이 섞여 들었다. 다그닥다그닥 아메리카 인디언 카우걸이 그들의 집으로 돌아가자 남자들은 모두 어디론가 가버렸다. 전쟁터로 떠나고 아무도 없다. 언제나 지기만 하는 전쟁, 살아서 돌아오는 남자는 없었다. 오늘은 고기가 많이 붙은 들소를 세 마리나 잡았다. 잡는 기술도 늘어서 한 마리를 잡으려 했지만 두 마리가 덤으로 잡혔다. 예전에는 남자들이 잡아다 주었건만 남자들은 전쟁터에서 모두 죽었다. 이제는 카우걸들이 너무도 쉽게 사냥에 성공했다. 맛있는 고기를 불에 구워먹지만 수소를 잡아먹을 때마다 처량하기만 하다. 아메리카 인디언이 자꾸만 죽어간다. 자꾸만 자식들이 죽어간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정말로 이럴 수 있는가! 아메리카 중부평원에서 소들이 죽는데 덩달아서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왜 죽어야 하나? 인디언은 사람이다. 인디언은 사람이다. 소가 아니다. 소가 아니다. 소가 아니지만 아메리카 인디언은 야만인이니까 죽어야 한다. 야만인은 죽어야 한다. 검은 소들이 죽고 누렁소도 죽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죽었다.
3계단에는 굶주린 사람들이 ‘범본 여편네 창구멍 틀어막듯’ 음식을 먹는다. 가슴팍에는 범을 새겨 넣고 있건만 배고픔을 달래지 못해 모두가 범이 되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홍수는 그들을 비켜가지 않았다. 정든 집도 버리고 가족들이 모두 도망쳐왔다. 한낮에 이글거리던 태양도 밤이 되면 아무 소용이 없다. 몸에 걸치고, 두르고, 불을 피우고 그러다가 땔나무가 떨어지면 할 수 없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밤은 제일 싫다. 먹이를 잃어버린 범들이 어둑어둑한 밤에는 사람을 잡아먹기도 하여 돌아가면서 보초도 서야한다. 어제도 기력이 약한 어린이와 초로의 여인이 범에게 죽었다. 뼈다귀만 강물에 내다버렸다. 푸른 강물이 황톳물로 변하였건만 아직도 원래의 맑은 물로 바뀌진 않았다. 산을 넘고, 내를 건너고, 강을 지나고, 깊은 골짜기로 들어서 아름다리 숲을 지나서, 첩첩산중을 지나야만 만날 둥 말 둥한 범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굶주린 땅에까지 내려와 있다. 나쁜 마음씨를 가지고, 사람들을 괴롭히고, 고통에 빠뜨리는 일만 일삼는다면 범보다 더한 쪽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범은 무서운 이빨과 발톱으로 사람을 할퀴고 목덜미를 물어뜯고 피를 솟아내게 하고 부러진 목뼈로 인해 숨이 끊어지는 사람을 잡아먹는다. 인간들은 범보다 더 무서운 총을 가지고 있다. 총보다 더 간편한 독약과 독가스를 가지고 있다. 범은 아무리 많이 잡아먹어도 몇 사람을 해치지 못한다. 인간들은 핵폭탄, 수소폭탄을 이용하면 순식간에 수백만 명을 잡아 죽인다. 잡아 고통을 주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흔적 없이 죽게 만든다. 사람은 범보다도 더 무서운 존재이다. 제1지하국가에서 사람들이 죽었다. 6천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군대에 의해 죽었다. 사람은 범보다도 더 많은 사람을 죽였다. 범은 아주 신사적이며 낭만적인 동물이다. 범은 아주 나쁜 동물이 아니다. 사람이 더 나쁜 동물이다. 사람을 이겨왔던 범들이 도저히 사람의 악랄함을 견디다 못해 범들이 집단화 되었다. 늘 한 마리씩 돌아다니며 그들의 영역을 보존해 왔는데 식인종 사람들 때문에 무리지어 산에서 내려오고 아예 산을 떠나서 강이나 호수 가까이에서 살기도 한다. 범들의 생활권이 위협될수록 비례하여 인간들의 살육의 폭이 커졌다. 범이 자연수명을 누릴 때에 인간들은 서로가 총질을 하지 않았다. 범들이 그들의 생존지인 깊디깊은 산속을 잃어버릴 때 인간들은 나쁜 공기, 오염된 물로써 서서히 죽기 시작했다. 범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산을 떠나게 되자 인간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폭탄을 퍼붓고 같이 살기보다는 서로가 죽이길 원했다. 인간들이여, 제발 범을 보호하여 달라고 히말라야 산의 범, 티베트고원의 범, 백두산의 범, 몽골초원의 범이 연대하여 그들 생존권수호를 위한 탄원서를 인간들의 대의집합체인 지구본부에 제출했다. 지구본부에서의 답신은 그들 범에게 죽은 고기도 먹을 수 있는 독수리, 까마귀의 식성으로 반강제적인 변화가 생기지 않으면 생존권을 완벽하게 보호할 수 없는 지경임을 이해하고, 스스로 그런 방향으로 살아가는 것은 인간들이 방해하지 않겠다는 즐겁지 못한 답신밖에 받지 못한다. ‘범 없는 골에 토끼가 스승이다.’는 옛말도 사라졌다. 토끼가 없어져 버리니 범이 먹을 양식도 없다. 너무도 굶주린 범은 유전인자 중에서 생식능력이 퇴화되었다. 암범과 교미를 시켜도 제이세가 태어나지 않았다. 수정 능력이 상실되었다. 인간들은 더 이상 범들을 보지 못한다. 동물원에서도, 첩첩산중의 야생에서도 절대로 볼 수 없다. 범들은 지구를 떠났다. 살기 싫은 지구를 버리고 말았다. 동물들이 보금자리를 세울 수 없는 저주의 땅을 영영 떠나고 말았다. 범들의 화석을 전시해놓고 옛날을 되새기는 사람들이다. 전시된 범가죽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범의 기록이 생생하다.
‘어째서 우리들 범은 살 수 없었는가? 그 답은 우리 범들은 모른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멸종된 동물이 되었다. 부디 바라는 점은 인간들이여, 그대들도 지구상에서 멸종되는 일은 생기지 말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남기고 싶은 말은, 인간들이여, 너희들도 아름다운 지구에서 멸종되지 말기를 바라노라.’
4계단에는 토끼왕국의 궁전에서 회의가 열린다. 회의로 나라가 망하지 않으려면 30분 이내에 결론이 나도록 해야 한다. 중요한 일일 경우에도 열흘을 넘겨서는 안 된다. 시간을 재는 왕궁 감사관은 급한 국가중대사를 시간을 놓쳐서 망친 경우를 늘 교육한다. 바다 용왕에게 잡혔다가 돌아온 토끼는 하루가 여삼추 같던 괴로운 시기도 있었다. 암수 한 쌍이 만나서 사랑 놀음을 할 때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하여 세밀히 관찰하려면 슬로우 비디오를 사용해야 한다. 회의는 갑론을박이 많으므로 몇 번씩 거치는 신중한 결정에는 미흡하지만 중대사는 이미 정해진 것이고 세부사항은 너무 많은 결정과정을 거칠수록 낭비인 것은 분명하다. 토끼들은 낮잠을 자지 않는다. 거북이가 땀을 뻘뻘 흘리며 노력하는 모습을 아예 보지도 않고 관심이 없다. 오로지 정해진 자기의 길을 간다. 사일로에는 사람의 접근이 불가능하다. 고약한 가스가 배출된다. 방독면을 쓰고 일을 하다가도 마른 풀 속에 독초가 섞여 있어서 두꺼운 장갑을 비집고 피부에 병을 일으킨다. 원격장치로 외부사정을 읽어내지만 내부의 풀들을 정확하게 조사하지 못한 상태이다. 토끼들이 얼씬거리지 않으면 가까이서나, 멀리서나 사일로는 산처럼 보인다. 강 언덕에는 클로버가 돋아나 바람에 한들한들 물결을 이룬다. 흰토기, 갈색 토끼 이리저리 깡충깡충 줄달음치는 토끼들이 두 귀를 쫑긋쫑긋 쉴 새 없는 동작을 연출한다. 구름은 하늘높이 두리둥실 흘러간다. 맑은 두 눈에는 사일로에 물고 갈 맛있는 것들을 두리번두리번 찾고 있다. 흰 토끼들은 주로 풀만 상대하므로 이런 데서는 훨씬 빨리 적응하지만 산토끼들은 도토리를 찾아내러 애쓰지만 상당한 시간동안 헛수고를 많이 한다. 야트막한 동산을 지나 숲이 우거진 쪽으로 이동을 하게 되면 갈색토끼들이 더 많은 양식을 저장소로 가져온다. 일찍 일어나 부지런한 나날들을 보낸다. 나쁜 일이라곤 전혀 않는다. 어찌 보면 한심스러울 정도로 꾸준한 노력을 멈추지 않고 계속한다. 제 방귀에 놀라는 족속들이라 사람의 접근이 느껴지면 혼비백산 도망을 친다. 자기방어능력은 선천적이다. 아무리 작은 소리라도 들으려는 기다란 두 귀는 보호본능의 신체적 변형이다. 미약한 냄새를 맡으려는 가늘고 섬세한 수염은 초미세신경회로가 뭉쳐 있다. 풀쩍풀쩍 멀리까지 뛸 수 있게 뒷다리의 힘은 대단하다. 추위에도 견디도록 보송보송한 털을 감싸고 있다. 토끼들이 우글거리는 토끼굴 근처에는 늑대들이 호시탐탐 으르렁 떼를 지어 다닌다. 초원은 토끼들의 천국이지만 먹이사슬에서 꾀 많은 토끼의 영역은 육식동물의 양식거리에 불과하다. 한 번도 토끼가 늑대를 사냥한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토끼는 생태계상 정해진 길을 바꾸질 못했다. 겨울 내내 어려울 때 먹으려고 쌓아올린 사일로는 제삼의 동물에게 어이없게 약탈당할 운명의 토끼들이다. 그래도 놀지 않고 땀을 뻘뻘 흘리며 풀들을 모아 아름다운 산을, 피눈물의 산을 만들고 있다. 토끼띠의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피라미드의 돌을 나르거나, 가장 하층의 구조에서 일만 하면서 고생한 사람들이 아주 많이 분포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천대받는 노비였거나, 백정이었고, 인도에서는 수드라 계층이다. 토끼왕국에 온 저승사자들은 ‘솥은 부엌에 놓고 절구는 헛간에 놓아라.’라는 방식으로 더 이상 살기를 원치 않는다. 그들이 마주친 토끼들처럼 부지런히 살지 않는다. 양식을 구하러 비굴한 노동도 포기한 상태다. 토끼왕국의 사일로를 점령하여 더 나은 방법으로 연명하는 일과 토끼의 숫자가 줄지 않는 범위 내에서 손쉬운 토끼사냥만 머리를 맞대고 연구할 뿐이다. 너무도 확연하게 무참한 방법으로 토끼들이 사람의 먹이가 될 상황전개가 나타난다. 그러면 토끼왕국의 토끼들이 저항할 방법이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 토끼들은 아무리 긴 시간 회의를 한들 소용이 없다. 토기 깃발을 휘날리는 토끼띠의 사람들이 토끼를 잡아먹고 살아가다니 아이로니컬하다. 들로, 산으로 마구잡이식으로 토끼는 꽥 소리도 못 내고 죽어갔다. 온통 토끼 굽는 냄새, 연기, 토끼가죽이 너부러지고 토끼털은 따뜻한 가죽옷이 되었다. 발가벗고 살아도 무방하지만 토끼띠 사람들은 엄청난 양의 토끼털옷을 장만하여 동굴 속에 저장까지 하였다. 동굴벽화에는 푸념들이 그려졌다. 이왕이면 우리들은 토끼띠 사람임을 부정하자. 너무 심한 것 같으니 토끼 깃발을 무엇으로 바꾸어야 할까? 의논이 시작된다. 차라리 늑대깃발이 어울린다. 가슴팍에는 늑대머리를 새기고 모든 탑, 건물, 동굴에도 늑대의 형상을 조형하고 늑대깃발을 펄럭이자. 그래 맞다. 늑대가 우리들이다. 이 땅에는 늑대가 판치게 된다. 흥얼흥얼 늑대울음이 노래가 된다.
크우웅
크우웅
우리들은 용감한 늑대들
크우웅
크우웅
우리들은 용감한 늑대들
맛있는 토끼들아
너희들은 우리들을 위해 존재하네.
바보 같은 토기야
원망 말고 다른 세상에서 만나지 말자.
크우웅
크우웅
우리들은 용감한 늑대들
우리들은 토끼띠 사람들이 아니다.
5계단에는 하늘로 승천하는 용이 매달리는 사람들로 인해 땅바닥에 떨어져 분을 삭이지 못해 미친 듯이 포효하건만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맞고함을 치니 오히려 망자들의 목소리가 산을 울리고 강물을 회오리치게 한다. 물살이 급해질수록 소리는 점점 커진다. 절벽으로 떨어져 내릴 때는 야트막한 산에 소나무들이 바람에 쓰러지기도 한다. 폭포가 되어 세찬 물줄기가 내리 꽃이는 지점에는 한 쌍의 용이 그 물을 맞으면서 하늘로 승천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다 지쳐 하얀 물보라에 한숨 섞인 숨소리가 합하여 푸우푸푸 흰 거품이 천리 멀리까지 튕겨가는 듯하다. 카누를 탄 용감무쌍한 사람들이 용의 머리를 새겨 넣은 노를 저으면서 폭포 밑에서 90° 각도의 절벽을 기어오르려 미친 듯 설치고 있다. 아마 제정신을 잃은 집단이다. 살아생전 너무 자주 용꿈을 꾸고 용처럼 하늘을 날고 싶은 소망이 도를 지나쳐 아직도 그대로 실천을 하는 부류의 인간들이다. 불규칙적인 폭포수의 압력에 카누가 뒤집히자 이들은 몸에 부착된 질소완충장치에 공기를 주입하여 폭포의 중간높이에 둥둥 떠가지고 떨어지는 물을 어지러운 상태에서 관찰하고 있다. 점점 환시와 환청으로 옮아가는 과정에서 모두들 두 마리의 오징어가 폭포수를 거슬러 위쪽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본다. 끝 지점이 바로 폭포시작 지점에 이르자 오징어는 갑자기 용의 머리로 변신하여 거센 힘을 발휘한다. 마지막 순간에 기어 올라가던 두 마리는 다시 밑바닥에 쭉 쳐져 떨어진다. 그래도 끄떡 없이 대롱대롱 매달리듯 그 자리를 유지하고 한 발짝 뛰어 넘으면 절벽을 벗어날 듯이 바둥바둥거리고 있다. 이 괴물을 잡으려고 작살을 핑하고 쏘아보니 시꺼먼 먹물이 그들에게로 휙 뿌려지고 시야를 가려 할 수없이 모두 폭포 아래로 곤두박질치게 된다. 수압차에 의해 금방 몸은 산산조각이 나겠지만 특수방법으로 고안된 부력조끼 덕분에 죽지 않고 급류에 휘말릴 형편에서 서로가 엉겨 붙어 아슬아슬 목숨을 연장하고 있다. 겨우 정신을 차릴 즈음에 밑바닥에 웅크린 용이 자신의 몸을 뒤틀기 시작한다. 순간적으로 사람들은 모두가 개개인으로 떨어져 버리고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도 없다. 천 년이 흘러도 한 번도 하늘로 못 올라간 분풀이를 하려해도 마땅한 대상이 없던 차에 무엇인가 비늘에 긁적거리자 세차게 휘둘러 버린다. 비늘조각이 하나 떨어지면 온 폭포의 물고기들이 덤벼든다.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물고기 떼 때문에 카누를 탔던 사람들은 생죽음을 당한다. 팔다리의 살점을 뜯어먹으려는 물고기를 만나서 그들은 최후 발악적으로 허둥지둥 대었지만 먹이를 놓치지 않으려는 생태계의 법칙으로 인해 뼈다귀만 남는 신세가 됐다. 카누와 노는 산산조각이 나서 물에 떠내려갔다. 용띠 사람들은 폭포수의 안개가 자욱한 마을에서 산다. 늘 물에 떠내려 온 파편들을 수집하여 보고 피해의 정도를 짐작한다. 열흘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면 분명해진다. 아무도 돌아오는 사람이 없다면 죽었다는 잠정적 결론에 도달하고 거기에 맞추어 일반적인 사회활동을 제약한다. 쾌청한 날에는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으나 평상시에는 앞뒤의 분간도 힘들다. 안개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전설상의 동물인 용을 실제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안개 속에 휩싸인 물체를 잘못보거나 상상속의 환시로 용을 보았다고 하겠지만 증거물을 제시한 인간은 역사 이래 한 명도 없다. 오히려 화석 속에 나타나는 공룡은 진실로써 존재했던 생물이다. 공룡처럼 거대한 것은 구렁이나 방울뱀이었을 것인데 과장하여 용으로 의인화시킨 안개 속의 작업이었다. 공룡은 아니지만 거대한 고래는 과거의 공룡에 버금가는 동물이다. 어류가 아닌 포유류이다. 용띠 사람들은 용을 찾았지만 방울뱀, 공룡, 고래에서 비슷한 흔적을 유추할 뿐 정말로 확실한 용의 증거는 없다. 불확실의 기준위에 세워진 세계는 불안의 연속과 예측가능이 위협받는 일로 인해 용띠 사람들은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기보다 즉흥적이고 순간순간의 맞대응으로 살아가고 있다. 안개가 걷히면 온갖 축제로 떠들썩하다가 안개가 쌓이면 원래하던 방식으로 너무도 쉽게 되돌아간다.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만나는 안개 속의 일들이 대충 짐작이라도 할 수 있다면 대책이라도 세우겠지만 막무가내로 그를 밀어 넣고 있다. 누구에게 하소연하려고 해도 몸과 마음이 말을 듣지 않는다. 발걸음을 다시 궁으로 되돌리려 안간힘을 섰지만 오히려 반대로 아래로 내려선다.
6계단에는 보기 싫은 뱀들이 혀를 날름거린다. 소름이 끼친다. 대가리가 세모꼴의 독사는 유난히 무섭다. 이빨이나 혓바닥에 물리는 날에는 생명이 위태롭다. 땀이 줄줄 흘러 온몸이 축축하다. 자꾸만 헛것이 보이더니 눈앞에는 수많은 뱀들이 불을 뿜으며 위협한다. 아무리 정신을 차리려 노력하여도 제풀에 기절한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귓가에 나지막한 음악이 들린다. 피리소리는 날마다 늙은이가 연주하는 곡이다. 근처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귀에 익었다. 그가 눈을 살며시 뜨면서 바라본 노인은 인생의 황혼이 깃든 서글픈 모습이다. 거친 손마디, 빛에 그을려 새까맣게 쭈그러진 피부, 허연 백발이 바람에 휘날린다. 약간 고개를 돌리자 그는 또 다시 기절하고 만다. 코브라가 혀를 날름거리며 빙빙 감아둔 몸을 하늘로 향해 쭉쭉 뻗다가 갑자기 그에게 달려드는 착각으로 안개 속에 갇힌다. 다시 정신을 차리니 자기의 몸에 뱀들이 칭칭 감겨있다. 목을 조이는 것도 있다. 그 순간 심장이 멎어버렸다. 뱀들은 죽은 사람을 이빨로 물어뜯어 피를 내고 혓바닥으로 살점을 핥았다. 몸집이 굵은 것들은 손목, 발목, 목둘레를 조이기도 했다. 다행히 뱀들은 노인이 독을 모두 빼버린 무독의 독사들이다. 그는 심장이 멎었지만 피를 흘리고 뱀들이 무지막지 달려들어 본의 아니게 인공호흡을 한 덕택에 숨을 쉬기 시작했다. 숨을 기도를 통해 내뱉고 팔다리가 약간씩 꿈적이고 온몸을 서서히 뒤틀자 뱀들은 그 자리를 차례로 떠난다. 한참이 지나서 제 정신이 든 그는 온몸이 피투성이에다가 스멀스멀, 미끌미끌 무엇이 기어 다닌 듯한 기분이다. 정신을 잃고 죽은 것 같았는데 죽지 않고 피 냄새를 맡으며 몸을 비비적거린다. 겨우 일어나 않았다가 비시시 몸이 쓰러졌는데 도저히 일어날 기력이 없어 하염없이 잠이 들었다. 꿈속에 나타나는 사람들은 마음속에 뱀이 들어있다. 어떤 사람은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가 감춰져 있다. 아름다운 처녀의 가슴속에도 놀랍게도 세 마리의 뱀이 꿈틀거린다. 한 마리는 신데렐라를 희망하는 뱀이고, 한 마리는 백마 탄 낭군을 만날 뱀이고, 나머지 한 마리는 귀여운 아기를 주렁주렁 데리고 다니려는 뱀이다. 잘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희망사항들이다. 탐욕이 없길 바라지만 적당한 욕심을 가지지 않으면 이 아름다운 처녀는 미인대회에 나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신데렐라가 될 이유가 사라진다. 시집갈 마음이 없으면 남편도 구하지 않고 아기도 낳지 않으면 인류에게 도리어 곤란을 끼칠 수 있다. 가슴속에 살아있는 뱀들이 적당한 수준에서는 활동을 해야 하는데 전혀 뱀의 흉내를 내지 못하고 고고하다면 인간만사가 너무 이상해질 상황도 생길 것이다. 미인대회에 아무도 나오지 않으면 아름다운 처녀를 뽑는 일이 불가능해진다. 멋있는 낭군을 찾으려는 내재된 욕망이 결실을 맺지 못하면 인구는 줄어든다. 부작용을 인정하더라도 후세의 생산은 되어야 하므로 사람의 마음속에 숨어있는 성적욕망을 버리도록 강요하는 것은 모순이라 할 수 있지만 아름다운 처녀 가슴에 세 마리의 뱀은 징글징글 무섭기까지 하다. 이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꼼짝도 하지 않고 잠만 잔다. 날씨도 추운 겨울이어서 활동하기 불편해서인지, 할 일이 없어서인지 분별이 안 된다. 겨우 기운을 내어 다른 지역으로 옮겨보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더욱 깊은 잠을 잔다. 앞서의 사람들은 5년 동안 잠만 자고 있고 뒤의 사람들은 20년 동안 아무 하는 일없이 숨이 끊어지지 않고 잠만 자고 있다는 설명이다. 에너지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식량도 소비하지 않는다. 다만, 공간을 차지하고 비켜주지 않는다. 10년이 넘어서는 식물인간 같은 사람들 때문에 살아있는 사람들이 생활이 곤란하여 장소를 정하여 이동시켜 놓았다. 대부분 가슴속에 뱀이 많은 사람들과 실제로 뱀과 같이 행동하다가 뱀처럼 동면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잠들어 있는 망자들은 유령으로 그에게 다가와 속삭인다.
‘당신도 잠을 자시오. 당신도 한없는 욕망을 이루어내려 노력하고 실천하시오. 그러면 이곳에서 영원히 휴식을 취할 수 있소. 열심히 노력하는 것도 한 번이면 족하지. 이곳에서 또 고생할 필요가 있소.’
7계단에 내려서니 위풍당당한 말들이 줄을 지어 초원에 서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전쟁놀이를 하고 있는데 동원됐다. 한 마리 한 마리마다 건장한 젊은 용사가 올라타 있다. 초원에서만 살면서 전쟁을 쳐왔는지라 눈이 밝아 아주 멀리 있는 미세한 먼지바람을 잘 찾아낸다. 웬만한 망원경만한 인간의 실제 시력이다. 보초병들은 돌아가면서 몇 날이고 외부의 변화만 관찰한다. 멀리까지 이동할 때는 말안장에 꼭 매어둔 양식을 먹는다. 쇠고기를 말려서 가루로 만들어 소를 잡고 난 뒤 꺼내 말린 소의 방광에 넣어가지고 다닌다. 따뜻한 물에 따서 마신다. 말들도 엄청난 양의 풀과 물을 마시므로 길을 잘못 들어 몇 날이고 몇 달이고 물길을 찾지 못하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 말이 마실 물이 없으면 절대로 그곳으로는 움직이지 않는다. 야생의 말이건, 병사들이 탄 말이건 들짐승이 눈에 띄는 데는 물이 있다는 증거이고 물이 있으면 풀이 돋아날 기초적 조건이 된다. 부득불 사막을 횡단하거나 높고 험한 산맥을 넘을 때는 과거에 그 길을 다녀본 사람, 경험이 풍부한 자를 반드시 데리고 출발한다. 소떼를 사냥 할 때는 가지고 있는 무기와 사람 수, 소의 수를 먼저 확인하고 날씨를 점검한 다음 착수한다. 적은 사람으로 소떼를 사냥하다간 죽을 수도 있다. 소떼와의 대결은 일반적인 경우 사람의 숫자가 월등히 적다. 군대가 나설 때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지만 대부분의 사냥에서 군대가 움직이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가장 앞선 방법은 먼 거리에서 망원경이 달린 마취용총으로 소를 명중시키고 무리지어 있는 소떼들을 유효적절하게 분리하는 일이다. 이 경우 소떼를 몽땅 생포하기는 불가능하므로 마취용총에 생포될 수 있는 약간의 소와 대부분의 소를 떼어놓기 위해 일정한 구역을 띠로 하여 그 선에는 집중적인 사격을 가하여 소들이 놀라 도망가되 사냥꾼의 반대방향으로 돌진하도록 유도한다. 도망가는 방향이 돌발적 사정으로 뒤바뀐다면 생죽음을 당할 위험이 있다. 아무리 힘이 세고 달리기를 잘하는 말이지만 죽음 앞에서 들이닥치는 소떼들의 파괴력은 무시무시하다. 마취용 망원경총이 없을 때는 직접 사격을 가하는 총을 사용해 소를 피투성이로 만든다. 그 총도 없을 때는 밧줄과 창으로 사냥을 하고, 창이나 밧줄이 없을 때는, 맨몸으로 마상에서 소를 포획해야 하는데 이럴 경우는 아예 소 사냥을 포기해야 한다. 무기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는 소떼만 피하는 방어방법만 찾게 된다. 뾰족한 방법이 생기지 않는다. 재빨리 소떼들을 동요시키지 않으면서 그 자리를 피하거나 소 발굽에 채이거나 밟히지 않게 구덩이에 쏙 들어가거나 그런 구덩이도 없으면 신통한 대책이 없다. 사람들이 이용하는 말들은 쓸모가 있을 때도 있지만 가슴팍에 말띠를 새기고 깃발을 펄럭이는 망자들은 그렇지 않다. 너무 인원이 많아서 초원에서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말타기를 할 수 없다. 대부분 생기가 없고 시들시들하다. 아무리 보아도 젊은 사람들인데도 말에 태우면 몸을 가누지 못해 떨어질 것 같다. 이곳에서 질서를 만드는 방법은 너무나 원시적이고 비인간적 방법을 사용한다. 서로에게 적개심을 고취시키고 망자들이 원하면 그 반대의 것을 주어서 제정신을 못 차리고 싸움질을 시키기만 하므로 서로가 서로를 말라 비틀어 죽게 만들고 있다. 좁은 공간을 활용하려니 운동량을 줄여야하고 인위적으로 활동을 제한한다. 더욱이 잠복되어 있던 엄청난 스트레스로 말띠생의 무리들이 스스로 떼죽음을 재발하는 사건이 자주 일어난다. 망자의 땅에서 풀지 못한 힘이 순기능적으로 발산되지 아니하고 역기능으로 작용하도록 조작하여 망자가 또 죽게 되는 질서의 축으로써 이 땅은 유지되고 있었다. 어떤 집단은 가장 현명하게 대처하여 서로를 이간질시키고, 싸움을 부추기고, 서로에게 총칼로써 죽음을 향해 치닫게 할 때마다 참고 참아가면서 파국을 면해보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겨우겨우 지탱하지만 그럴 때에는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터져버린다. 산등성이, 각 고을마다, 초원마다, 걸려있는 깃발이 똑같은 시각에 땅바닥에 떨어지고 망자들의 가슴팍에 붙은 기록들도 사그리 사라지고는 무질서로 만들어 버린다. 안정과 질서를 바라는 자, 평화와 관용을 나타내는 자는 오히려 오래 살아남기가 힘든 기괴한 세상이다. 끝까지 멸망으로 나아가는 자가 존경받는, 대우받는 사회가 이 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