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교육지원청 행정지원과장)‧박&&씨 장남 %2B%2B군, 유**‧정&&씨 장녀 %2B%2B양=17일 오후 4시30분 부산 $$호텔 2층 그랜드볼룸.
#화촉
▶김**‧김&& 씨 장남 세영 군, 박**(@@축협 본부장)‧이&& 씨 장녀 %2B%2B 양. 11일 오후 6시 대구 $$빌딩 5층 %홀. 피로연=9일 오후 4∼8시 ^^동(@@군 ^^면 @@대로 5425).
대구‧경북을 대표하는
‘@@신문’과 ‘%%일보’에 최근 실린 알림 내용이다. 광고주의 협찬으로 제작되는 이른바 ‘스폰서 섹션’이 아닌 사람면의 일부분이다.
‘가정의 달’ 5월은 혼인이 비교적 많은 달이다. 인용한 것은 둘 다 시기가 5월이다. 독자들은 신문에서 이 내용을 보면 어떤 느낌을 받을까. 직접 의견을 들어 보지는 못했다.
필자는 이들 신문을 넘기다가 이런 알림을 마주할 때면 한마디로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혼주가 공직에 있거나 지역 유지임을 공공연히 드러낸 경우 “이래도 되나” 싶기까지 하다.
영향력 있는 지역 일간지의 사람면에 ‘결혼’ 알림을 싣는 건 언론의 정도(正道)가 아니라고 본다. 관행화된 부음 게재도 재고할 필요성이 있을 것같다. 물론 급작스러운 부음과 예정된 결혼은 성격이 다르긴 하다. 결혼 알림은 독자를 위한 서비스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필자는 수년 전 이들 중 한 신문에서 대구의 현직 구청장의 혼사 알림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물론 그게 게재된 경위는 알 수 없다. 결과적으로 구청장을 아는 사람들은 축의금을 들고 많이 찾아오라는 뜻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건 본인에게 도덕 불감증을 넘어 청렴 의무 위반일 수 있다.
신문의 결혼 알림은 우리 사회가 한창 목소리를 내고 있는 ‘작은 결혼식’ 문화의 정착에도 역행한다. 한국소비자원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미혼자의 79.6%가 작은 결혼식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그러나 작은 결혼식을 한 비율은 여전히 5.4%에 지나지 않는다. 과시형 결혼문화를 바꿔 나가야 할 신문이 이런 지면을 운영한다는 건 이율배반이 아닐까.
또 국민권익위원회가 시행하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의 정신과도 배치된다. 아시다시피 공직자 등에 대한 경조사비 상한도 10만원에서 5만원으로 낮춘 마당이다.
현직 구청장의 결혼 알림을 떠올리며 그 반대편 사례가 문득 생각난다.
다음 달이면 3선 도지사직을 마감하는 김관용 경북도지사다. 필자는 그의 두 아들 결혼식을 지켜보면서 지역 지도자로서 그의 도덕성은 자격이 충분하다고 감히 말하겠다.
김관용 지사는 2015년 장남에 이어 이듬해 차남 결혼식도 ‘아무도 모르게’ 치렀다. 차남은 모교인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사돈은 5선 의원이자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이주영 국회의원이었다. 김 지사는 “부담을 주기 싫다”며 도청 공무원은 물론 지인들에게도 결혼식을 일절 알리지 않았다.
하객은 양가를 합쳐 100명이 채 안됐다. 결혼식이 사전에 알려졌다면 식장 안팎은 미어터졌을 것이다. 김 지사는 “지인들에게 아들 결혼식을 알리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라고만 말했다.
@@신문은 사람면의 한 귀퉁이에 그래도 ‘독자 여러분의 자녀 결혼을 소개해 드린다’며 전화와 팩스‧이메일 주소를 적고 있다. %%일보는 그런 안내도 보이지 않는다.
5월이면 혼사가 수도 없이 많을 것임은 불문가지다. 독자가 요청만 하면 다 실어 줄 수는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누구를 실어 줄까. %%일보에는 ‘%%일보 CEO아카데미 %2B기’ 등 자사와 관계를 밝힌 결혼 알림도 나온다. 작긴 하지만 자사 식구를 감싸는 지면 사유화(私有化)의 느낌마저 든다.
경조사의 의식을 빠꾼다는 것은 그렇게 쉽지는 않다. 그러나 언론은 계도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잘못된 관행을 바꾸는데 앞장설 사명을 가지고 있다.
비록 지면의 비중이 낮은 알림난이지만 결혼과 부음의 보도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볼 수 있고 언론의 현행알림 방식을 다시 검토할 때가 된 것아닐까?(동일문화 장학재단 협찬)
宋義鎬 (언론인, 대구한의대학교 교수)
경북 안동 출생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중앙일보 기자(1985∼2017)
저서 『청량산엔 인문이 흐른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