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굴손
김동원
덩굴손은 왜, 생각이나 있는 것처럼
그 거미줄을 돌돌 감고 있었을까
축 늘어진 시간이
군데군데 뚫린 구름을 깁고 있는 기미도 못 챈 채
무슨 법칙처럼 완강히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비스듬히 손목을 틀면서
또 왜, 그때 그 덩굴손은
무슨 생각이나 난 것처럼
감았던 제 손을 얼른 풀고는
거미줄 밖 허공의 피부를 이리저리 만져보다가
고개 돌려, 날 그렇게 쳐다봤을까
어느 날 우연히 알게 된 식물이,「덩굴손」의 주인공인 마(麻)와 조롱박이다. 유월 오후, 발톱이 3개 달린 거미 놈이 씨줄(가로 방향)과 날줄(세로 방향)을 그물망에 쳐놓고 먹이를 기다리며 중앙 벼리 끝에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 나는, 조롱박 덩굴손의 이상한 행동을 보게 되었다. 곤충들이 걸려드는 찐득찐득한 씨줄과 끈적거리지 않는 날줄을 덩굴손이 조심스럽게 만졌다. 제일 앞쪽에 뻗은 덩굴손은, 무슨 생각이나 있는 것처럼 그 거미줄을 돌돌 감더니 아주 천천히 잡아당기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식물도 생각을 하는 구나’. 마치 내가 목격한 사실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그 때 다시 조롱박 덩굴손은 거미줄에 감은 손을 풀더니, ‘이건 타고 올라갈 만한 단단한 밧줄이 아니 군’ 그런 표정을 허공에서 짓더니 덩굴손을 내 쪽으로 돌려 날 이렇게 쳐다보는 것이었다. 정말 그날은 기묘하리만치 야릇한 느낌이 들었다. 내 쪽을 보고 있는 조롱박 덩굴손이, 인간의 생각을 모두 알고나 하는 듯이 여겨졌기 때문이다. 뭐라 할까, ‘인간만이 생각하는 생물은 아니다, 식물 역시 우주 정보를 모두 분석해서 자신들의 생각과 느낌으로 나름대로 몸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는 것 말이다. 실제로 생물은 ‘생체광자’를 통해, 매우 미약하지만 세포들 간의 통신도 주고받음이 확인되었다. 세포와 물이 만든 관(管)인 일종의 통신망을 통해 세포와 세포에 연결되어 생체 정보인 파동, 즉 생체광자를 통해 서로 대화하는 것이다.
내가「덩굴손」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 것은, ‘덩굴손’이란 객관적상관물을 인간과 사물의 ‘본다’는 행위와 접목시켜 어떻게 시로 완성할 수 있는가의 과정을 말하고자 했다. 즉, 시가 ‘사실’과 ‘관찰’, 그리고 ‘체험’과 만날 때, 전혀 새로운 한 편의 시가 탄생함을 시인은 깊이 주목해야 한다.
김동원(사진)
약력
경북 영덕 출생.
1994년『문학세계』`시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1997년 제 1시집『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출간
2002년 제 2시집『구멍』출간
2004년 제 3시집『처녀와 바다』출간
2007년 동시집『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출간
2011년 시 에세이집『시, 낭송의 옷을 입다』출간
2014년 평론집『시에 미치다』출간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현, 한국시인협회, 대구문인협회원. 대구시인협회 이사.
『텃밭시인학교』시창작교실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