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환 작가- 대구출생 .대구성광고 졸업 .경북대 독문과 졸업 <주요저서>마음 중 단편 .대불(시집) .김대중 .한국전쟁 언저리 .금호강의 영혼(시집)
#매주 목요일 연재
지하세계 1
7. 세 블 국-1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는 세블국의 총독은 몹시 우울하다. 오늘 따라 몸도 아프고 마귀에 홀린 듯 정신도 흐릿흐릿 하다. 만사가 귀찮다. 편안히 쉬려고 처소에 들어서자 무시무시한 번개가 번쩍인다. 두려움이 온통 방안의 공기를 싸늘하게 바꾼다. 징조가 이상하다. 좀처럼 생기지 않던 분위기이다. 이제껏 아무 일없이 지내온 세블국에 어려움이 닥칠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이 세상의 어디와도 연락은 끊겨 있고 아무도 모르게 살아왔다. 가까운 피붙이의 변고라도 생겼을까? 그렇지 않고서는 이처럼 고통스런 모습으로 바뀔 이유도 없다. 과거의 인연을 끊어야 한다. 새삼스럽게 들추어 무엇 할 것인가? 생로병사의 이치에 따라 태어나, 늙고, 병들고, 죽어가고 있는데 순서가 바뀌거나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수소문 해봐야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사건도 아닐 것이다. 죽었다면 되살려 낼 방법도 없다. 억울하게 죽었다면 원수를 갚아야 한다고 이 땅을 버리고 되돌아 가나? 그것도 쉽지 않다. 아파서 고통에 신음한다면 손쉽게 병을 치료해 줄 수 있는가? 그것도 어느 정도 한계에 부닥친다. 늙어가는 사람을 새파랗게 젊게 만들어 주는가? 그것도 못한다. 연락을 해본들 어느 것도 만족스럽게 해결해주지 못 하는데 굳이 인연의 끈까지 찾을 형편이 아니다. 자꾸만 괴롭히는 과거로의 행진, 없어지길 기대하면 더 집요해지는 일들, 부당함과 비굴로 점철되었던, 가슴 설레는 꿋꿋함으로 채워졌던, 흘러가 버린 긴 세월이 너무도 짧은 순간이기 때문일까? 불태워버리고, 찢어 없애고, 미궁 속으로 빠뜨려버려도 끝끝내 사라지지 않는 편린들. 가장 먼 기억 속의 한 장의 스냅사진은 벌거숭이의 백일 사진, 그렇지만 도저히 뇌리 속에 재생되지 않는다. 고작 되새길 수 있는 것은 네 살배기 동생을 잃어버린 일이다. 혼자서 멀리멀리 걸어가 버린 동생, 엄마를 따라 강가로 가버린 동생, 그렇게 엄마를 따라갔건만 엄마는 혼자 돌아오고 동생은 길이 엇갈려 엉뚱한 곳으로 가버려 모든 가족이 혼비백산한 일. 그것이 가장 오래된 기억이다. 분명히 같이 누워서 낮잠을 자다가, 잠깐 사이에 보이지 않다가, 저녁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은 동생, 누구도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된 하루. 온 집안에 비상이 걸렸다. 네 살배기가 갈 수 있는 곳은 몽땅 다 뒤지고 헤매어도 찾지 못한 날. 꽤 멀리까지 걸어가 버렸다. 오늘 남편은 있었다. 아이들을 분명히 있었다. 잊어버린 사람은 있다. 제1지하국가의 동생을 잊어버리고 살아왔다. 네 살배기가 어른이 되어서도 길을 잃었다. 또 길을 잃고 울고 있는 것이 아닐까? 동생을 잃어버린 날, 번개가 치지도 않고 천둥도 치지 않았다. 맑은 하늘에 더운 낮이었다. 솔솔 시원한 바람이 창호지문을 타고 흘러 들어오던 날이었다. 달콤한 낮잠에 즐거운 날이었다. 아무런 기후적 변화나 이상스런 징조는 전혀 없었다. 너무도 평범한 하루였다. 오늘은 평범한 하루가 아니다. 그러므로 동생이 집을 나가서 길을 잃어버리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예전에 동생들은 너무나 쉽게 울었다.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하루 종일 울었다. 과자를 조금 주어도 실컷 울었다. 잠시만 같이 놀아주지 않고 나타나지 않으면 내내 울었다. 내내 같이 놀아주고 과자도 많이 주고 엄마에게 데려가면 울지 않았다. 나중에는 혼자 놀게 내버려두고 과자도 살짝살짝 빼앗아 먹고 엄마에게 간다고 하곤 가다가 슬쩍 다른 곳에서 얼렁뚱땅 넘기곤 했다. 그래도 동생은 졸졸 따라 다녔다. 졸졸 따라 다녔는데 낮잠을 자고 나니 없었다. 잊어버린 것이 분명하다. 꼭 따라서 행동을 했는데 낮잠을 자면 동생도 따라 잤는데 어느새 일어나 걸어가 버렸다. 어디로 갔을까?
저녁이 되자 불안한 어둠이 짙어온다. 다행히 많은 사람들이 궁으로 들어오고 남편, 자녀들, 시종들이 들끓게 되자 마음이 다소 진정된다. 입맛은 별로 없지만 식사가 시작된다. 조그만 딸아이가 입을 뗀다.
‘엄마.’
‘왜 그러니.’
‘엄마도 언니가 있어요. 나처럼.’
‘그럼. 엄마는 동생이 있어요.’
‘그래요. 어디에 있어요.’
‘음. 멀리에서 살고 있어.’
‘나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 금방 알 순 없지.’
‘엄마, 엄마도 옛날에는 아주 작은 꼬마였어요. 엄마도 아기였을 때가 있어요. 아장아장 걷는 아기 있잖아요.’
‘그렇지. 아주 옛날 옛날에.’
‘정말인가요. 믿기지 않는데.’
‘정말이지. 왜 거짓말을 하겠니.’
‘아, 아가였단 말이군요. 울보아기. 참, 이상해요. 어른들이 어떻게 아기처럼 아장아장 걸었을까요?’
‘그거야. 모든 사람들이 아기에서 점점 자라서 너처럼 됐다가 어른이 되지.’
‘나도 어른이 되는가요.’
‘세월이 흐르면 어여쁜 처녀가 되었다가 어머니가 되지.’
‘어머니가 된다고요.’
‘물론이지. 어머니가 되어요.’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물음에 한참 대답을 하고 나니 어지러운 생각이 약간 달아났다. 예전에는 큰 애들이 깡패란 이야기를 하니까
‘깡패가 뭐예요? 깡패가 뭐예요?’
계속하여 물었다. 깡패란 단어의 뜻을 모르는 아이들이 자라나서 전쟁, 선악, 파괴, 투쟁, 모든 단어들을 알게 될 것이다. 무의식중에 차차로 이해의 영역이 넓혀질 것이다. 세블국의 역사, 어떤 방식으로 지내왔는지, 연락을 끊어버리고 지내온 세월들도 모두 드러날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모르고 산다. 그 시점이 점점 가까워 온다. 모든 것을 스스로 알게 되는 날이 한 발짝, 한 뼘씩 다가온다.
밤이 되자 딸아이가 무섭다며 자꾸만 보챈다. 하루 종일 무서웠는데 밤이 되어 귀신들이 방으로 달려 들까봐 문을 꼭꼭 잠그고 자야한다고 야단이다. 아이들이 공포에 떠는 밤이면 어른도 즐거운 밤이 되기 힘들다. ‘고기도 저 놀던 물이 좋다고’하는데 세블국이 아이들에게 어느 정도 정서적으로 각인이 됐는지 분간하기도 힘들다. 어머니로서 딸아이의 무서움에 울음 우는 상태가 ‘동아 속 썩는 것은 밭 임자도 모르는 정도’면 참으로 미안하기 짝이 없다. 사람은 약하다. ‘돌절구도 밑 빠질 때’가 있는데 온갖 대책들도 무위가 된다. 그런데 세블국에서 고통과 견디기 힘든 밤을 지새우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무슨 희망이 그들에게 나타났나? 아무런 실제적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구체성을 결여한 행동들이 우리를 더욱 위험에 빠뜨릴 것이다. 빨리 밝은 빛을 본다면 훨씬 마음의 무거움이 줄어든다. 시간이여 어서어서 가거라. 우리, 모든 인류도, 절망에 허덕이는 늪으로의 발걸음을 원치 않는다. 깊어 갈수록 밤의 시각은 질기고 질기다. 이제껏 살아온 나날들은 순간의 일들 뿐 인데 왜 이리 더디 느껴질까? 무심한 남편은 푹 잠에 빠졌다. 깨워 버릴까 싶다가도 참아낸다.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면 무작정 깨워야지 생각한다. 이렇게 떨고 있는 줄 모르는, 나무토막처럼 감정을 느끼지 않고 자고 있다니 원망스런 심사가 된다. 살짝 잠을 깨워보니 금방 일어나지 못한다. 수고를 한 번 더하여 이제야 껌뻑껌뻑 눈을 비빈다. 잠자는 사람을 왜 깨우나? 는 투이다. 우리를 보세요. 눈빛을 보세요. 겁에 질린 표정을 살필 줄 모른다면 당신은 여간 강심장이가 아니에요. 이렇게 소리치고 싶다. 말이 목구멍에서 새어나오지 않는다. 한 밤중에 덜 깬 잠으로 상황판단이 무척 느린 남편이다. 시간이 좀 지나서야 자신의 분신과 가냘픈 짝이 불쌍해지고 측은해지는 모양이다. 왜 안자고 뜬 눈으로 있느냐고 묻는다. 딸아이가 이런저런 말을 해준다. 그제야 와락 아이를 꼭 껴안으며 뽀뽀를 하고 무서워말라고 얼렁뚱땅 수선을 피운다. 가장 즐거운 일, 가장 무서운 일, 지나고 나면 아무것 아닐 수 있고 영원히 기억 속에 괴롭힘이나 추적을 당할 수도 있다. 이 하룻밤은 왜 이리 사람을 서서히 괴롭힘을 당하게 하는가? 세상에 대하여 원수진 일도 없는 듯하고 모진 고통을 타인에게 가한 적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용서를 빌 뿐이다. 못난 우리들을 어여삐 용서하소서. 그 심정이 샘솟을 시점이고 그런 마음이 일렁이는 것이 이 순간이다. 악한 모습의 인간이여! 약한 세블국의 지도자여! 그들은 다름 아닌 총독의 가족이다. 남편, 딸아이들, 자신이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약한 자이다.
새벽녘이 되자 딸아이는 지쳐 잠든다. 어린이가 감당하기에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몸을 웅크리고 오른쪽 편으로 두 손을 모아 귀밑에 베개 삼아 누웠다. 이불을 덮어주기 전에 자세를 똑바로 해야 한다. 심하게 건드리면 겨우 잠든 아이를 깨울 수도 있으므로 살며시 웅크린 몸을 펴게 한다. 자기 몸에 맞춘 보드라운 천에다 꽃향기가 배인 베개를 긴 머리숱 밑에다 곱게 받쳐준다. 다리를 쭉 뻗게 하고는 공작새 무늬가 새겨진 얇은 이불을 덮어준다. 평상시에 딸아이는 저녁 늦게부터 아침까지 아무런 소란 없이 푹 잠을 잤다. 아주 어릴 때는 이부자리에 오줌을 누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런 일도 전혀 없다. 밤새도록 논다던가, 밤늦도록 공부한 일도 거의 없었다. 아파서 보채느라 밤늦게까지 칭얼댄 적은 간혹 있었다. 낮과 밤을 바꾸어 생활한 사실이 없다. 늘 하던 대로 낮에는 놀고, 밤에는 잠을 자고, 아침에는 일어나는 반복된 나날이었다. 오늘은 반복된 시간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늦게 일어나게 되고 식사도 제 시간이 바뀌게 된다. 약간씩 다른 경험과 습관을 맛보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일방적인 어머니의 지시나 훈육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머잖아 마음에 맞지 않으면 말대꾸도 하고 거부반응식의 행동도 나타날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다 총독도 잠이 든다. 힘에 부쳐서 스르르 주저앉고 말았다. 어쩌면 고통에 힘겨워하는 인간에게 이유 없이 찾아오는 잠이란 괴물은 만사를 잊어버리게 하고 휴식의 시간을 제공한다. 새로운 에너지가 보충되고 모든 생명체의 기관들이 잠시 기능이 약화되므로 오감을 통한 희로애락, 심신의 갈등이 잠재워지기 때문이다. 울음, 웃음, 육신의 고달픔, 즐거운 순간, 모든 일이 멈추었다가 새롭게 맞이하게 된다. 싫던 일도 잊어버리고, 하기 어렵던 것들도 다시 마주하면 한결 쉬워진다. 인간의 생명 속에 1/3은 잠만 잔다. 다음의 일을 잘하기 위한 예비단계이다. 너무 실컷 자고나면 오히려 나쁘고, 그와 반대로 너무 적게 자도 건강에 좋지 않다. 어느 정도 정해진 하루 중 1/3의 시간쯤은 잠에 투자해야만 정상적 생활이 가능하다. 남편은 잠들어 있는 두 사람을 물끄러미 쳐다보니 어느새 세월이 이처럼 지나갔는지 허망하다. 총독의 옆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아기가 늘 붙어 있다가, 큰아기가 붙어 있다가, 둘이 되고, 셋이 되고, 자꾸만 늘더니 나이든 아이는 떼어놓고 제일 어린아이만 곁에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조그맣던 아기가 성큼성큼 걸어 다니고 며칠 지난 듯한 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큰아이다. 그만큼 늙어가고 있었고 새 생명은 새로운 힘을 키워가고 있다. 깨어나면 오늘도 무슨 사고가 생길지 알 수 없다. 늘 보살피지 않으면 눈 깜박할 사이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고, 우물에 빠질 뻔하고, 집에서 언샘밭으로 곤두박질치고 정신이 얼얼하다. 하루에 세 번씩은 형제자매간끼리 싸운다. 싸워도 큰 싸움은 아니지만 늘 작은 애가 앙앙 울음보를 터트린다. 그러다가 헤헤거리고 아무런 일없다는 듯 지나간다. 그렇게 아옹다옹하다가 금방 웃음꽃이 필 수 있다니 어린애들 세계에나 통용이 되지 어른세계에 쉽사리 생겨날지 의문이다. 일찍 깬 잠으로 엎치락뒤치락 거리다가 설핏 졸음이 몰려오기도 하지만 깊은 잠에 빠지지는 못한다. 창밖을 보니 밤새도록 우루룽 꽝꽝거리던 하늘에서 줄줄줄 굵은 빗물이 떨어진다. 가뭄에 오금 저린 사람들에게 행운의 비이겠지. 농사를 지어야 할 농부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맛있는 농산물, 과일을 사먹어야 할 사람들도 똑같다. 세블국에서도 나무 숲, 언샘밭에 빗물은 중요한 것이다. 너무 많아서 문제이긴 하지만. 그래도 빗물이 땅에 떨어지지 않는 가뭄이 계속된다면 그 해결책은 난감하다. 비가 내린다. 정서적, 문학적 감동에 감수성이 무척 무딘 남편이지만 곤히 잠들어 있는 두 사람의 모습과 어우러져 비가 내릴수록 무언지 쓸쓸하고 서글픈 눈물이기도 하고 약간은 좋은 일이 생길 수 있을까? 기대로 부풀기도 한다.
아침이 되어도 비는 ‘벙거지에 우박 떨어지듯’ 내린다. 남편은 다시 잠들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을 찾아 볼일을 본다. 대소변을 보는 위치는 여러 곳이므로 한 군데에만 배설물이 언샘밭에 떨어지지 않고 여러 곳으로 분산된다. 자연적인 통풍구 구실도 아울러 한다. 약간 마음에 걸리는 점은 일반 사람들일 경우 망원경만 갖추면 배설물이 떨어지는 모습이 실제로 보이고 추적 장치로 기록도 가능하다. 왕궁에서의 배설물 처리는 일단은 시각적으로 볼 수 없도록 설계가 돼있다. 언샘밭에 활용하는 것은 똑같다. 세수를 하고 약간의 운동을 하고난 뒤 아침을 먹는다. 식탁에 두 사람이 빠지고 분위기가 썰렁하다. 기다리는 동안에 다른 식구들이 또 기다리므로 예전 시간대로 아침을 먹는다. 식사메뉴를 변화시키라고 주문을 해보았지만 달라지는 것은 많지 않다. 제2지하국가에서 공급되던 송쇄리통조림이 갑자기 공급량이 줄어들어서 더욱 형편이 나쁘다. 왜 그런 일이 생겼는가? 보고서를 훑어보고 대략적인 내용은 알고 있지만 총독에게 이야기 하진 않았다. 제2지하국가에서 좋은 일이 생기지 않고 사태가 악화되었다면 다른 나라들도 송쇄리통조림의 공급에 지장을 받거나 특별한 경우에만 물량공급이 정상적일 것이다. 멀리 떨어져 살고 있어도 연결고리가 완전히 끊어지지는 못한다. 가능하면 의식을 덜하고 살려고 늘 노력한다. 눈에 띄게 달라진 점들도 제2지하국가에서 연구소에 파견된 인원들이 급거 돌아가기도 하고 새로 오는 인원들은 예전에는 즉시즉시 왔었는데 무척 시일이 지나도 충원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제2지하국가 내에서 심각한 일이 발생한 것을 점점 더 느낄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계속하여 미루어오던 보고서를 남편에게 가지고 온다. 총독 앞으로 갈 내용들이지만 워낙 충격적인 부분이 많아서 일차검토를 거친 후 적절한 수위를 보아서 정확하게 올리던지, 심각한 부분은 제외를 하던지, 생각을 해보시고 지침을 달라는 내용이다. 남편은 집무실에 돌아와서 제1․2지하국가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쭉 알게 된다. 일이 어찌 되었건 많은 사람이 죽었다. 인명손실이다. 아무래도 망명객들이 많이 세블국에 들어오려고 할 텐데 거기에 대한 대책도 세워야 한다. 정치․경제․문화적 망명객이던 무조건 받아들이는 입장을 취할 것인지. 어느 정도 규제를 할지 여러 가지 방안을 선택할 수 있도록 연구된 보고서이다. 갈수록 태산인 것이 가장 염려스럽고 안전에 유의해야 될 부분으로 검허장 여왕 일행의 망명가능성, 총독도 망명해 올 가능성이 너무도 확연하므로 이들을 분리 수용하는 방안에서 어느 곳에 망명처를 제공하고 예우는 어느 수준에서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가? 에 대한 분석 자료도 실려 있다. 망명 후에 재집권가능성에 대한 배려, 새로 생긴 정권이 망명객을 되돌려 보내라고 외교적 노력을 기울일 때 대처방안도 보고 돼있다. 검허장 여왕이나 총독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안타깝다. 지금 보고된 사항들은 가공된 픽션이 아니라 현실로 나타나는 일들이다. 역으로 세블국에 문제가 발생하여 제1․2지하국가로 망명을 할 경우도 전혀 없다고 장담할 수 없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먼저 이들의 입장을 외교적 관행과 혈연적 견지에서 승인하여야 한다. 망명객을 당연히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일어난 사건은 대강 짐작은 되지만 아주 세세한 부분에는 확실한 정보수집이 덜되어 적확한 판단자료로 부적합하다는 자체결과도 들어 있다. 덧붙여진 두꺼운 보고서철에는 예전에 여왕 일행이 세블국을 방문하였다가 아무도 못 만나고 돌아간 사실, 사절일행들이 허탕 친 사항들이 모두 드러나 있다. 가장 비현실적 내용이지만 제1지하국가의 현재 생존하고 있는 7억 4천 만 명이 모두 세블국에 이민을 올 경우는 엄청난 문제점이 생겨남을 적시한다. 비행선의 부족, 연료의 부족, 국가전체의 엑스도스의 어려움으로 발생하기 난망한 것이지만 완전히 제1지하국가가 죽음의 땅으로 바뀔 때는 전혀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남편은 골치가 아프다. 제1․2지하국가의 모든 생존인구가 세블국으로 밀려온다. 죽기 싫어서, 죽지 않으려고, 그러면 무조건 다 받아들여야 하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지만 생각해보지 않던 일이 실제로 전개될 마당이 가까워 온다. 공포의 일이다. 아니면 축제의 일일까? 감당하기 어렵다. 정말 힘든 경우의 선택이다. 남편은 지레짐작까지 겹쳐서 걱정 안 해도 될 부분까지 상상의 세계가 더욱 확대되어 불안하고 어지러운 아침이 된다. 하여튼 총독의 남편이다 보니 싫던 좋던 겪어야 되는 일이 너무 많다. 결정권자는 부인인데 그에게 보고서를 가지고 올 필요가 뭐 있는가? 불만의 심정이다. 사랑하는 아내의 고통스런 짐을 덜기 위한 일이므로 참아야 한다. 이제까지 많이도 참아 왔는데 어려움만 닥치면 모든 것들이 그에게로 화살이 날아온다. 피할 재주가 마땅찮다. 방어할 방패가 없다. 도망갈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대결의 장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다. 어차피 부인에게 몽땅 알려야 한다. 충격을 흡수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정신적․육체적 쇼크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는 취할지언정 아무런 고통 없는 해결책은 내놓지 못하는 상태의 현실이다.
지금 당장에 취할 수 있는 일은 제1․2지하국가와 통신망을 복원시킬 수 있다. 독단적으로 가능하다. 일방적으로 상대방국가의 의견을 청취하여 가늠할 수 있다. 두 번째 방법은 중지하고 있는 정찰위성들로써 변화를 추적하는 일이다. 지하국가의 일을 완벽하게 알아내기는 힘들다. 세 번째 방법은 제1․2지하국가에 파견되어 있는 사람들의 보고를 접하는 것이다. 지금 올라온 내용들도 완전무결하지는 않아도 신빙성 있는 자료들이다. 생생한 현장상황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므로 중요한 곳에 파견된 사람으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들어본다.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지하국민들이 탈출을 시도하지 않고 폭풍전야의 고요함을 지닌 채 너무도 질서를 지킨다는 내용이다. 이 질서의 밑바닥이 더 큰 회오리를 감춘 것인지, 폭발의 시점을 지연시키는지, 아니면 원만히 수습될지 쉽게 예측이 곤란하다고 한다. 현재 상태로 아무런 움직임이 일어나지 않고, 체제가 엎어지지 않고, 아주 불안정한 형세로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재 살육이나 군대의 충돌은 발생하지 않고 불씨를 지닌 상태의 평온이 흐른다는 보고이다. 처참한 죽음으로 사람들이 제 정신이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죽기 싫어하는 본능으로 인해 더 맑은 이성을 발휘하는 듯하다는 내용도 섞여 있다. 교신을 마친 후 훨씬 마음이 가벼워진다. 짓누르던 압박이 서서히 풀리는 듯하다. 보고서 부분 중 일시적인 집단 대탈출로 세블국에 무시무시한 기세로 들이닥칠 상황은 읽지 않아도 될 성 싶다. 무참한 살육 부분과 이 내용은 마음이 평정되고 정신적 충격을 흡수할 정도가 된 다음 참고하기로 하고 내용의 축소를 지시하고 휴식을 취한다. 언샘차를 한 잔 마시고 편안한 자세로 지그시 눈을 감는다. 눈은 감았는데 지상국가의 그리운 산등성이, 지하국가의 휘황찬란한 동상이 휙 지나친다. 어렴풋이 피 냄새가 진동한 것 같은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시체는 없다. 잠이 쏟아지는지 감긴 눈이 금방 뜨이지 않는다. 상상과 현실 속에서 우리들은 상상 속에서만 살수 있다면 좋은 일만 생기고 고통도 존재하지 않으며 낙원과 기쁨만이 춤을 출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을 하고,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과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전쟁을 할 것이다. 마지막의 가장 아름다운 전쟁은 어떤 전쟁일까? 알 수 없는 전쟁, 평화로운 전쟁, 죽지 않는 전쟁, 부상병이 없는 전쟁, 파괴를 하지 않는 전쟁, 그런 상상 속의 전쟁을 현실로 만들어 볼 수 없을까? 전쟁도 전쟁 나름이고 살육도 살육 나름이다. 아무리 눈을 감고 생각해보아도 지상낙원을 건설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사상누각일지라도 보편적 인간성에 기초한 사랑전쟁, 평화전쟁, 행복전쟁, 환경전쟁, 인간성회복전쟁, 아름다운 전쟁, 새 생명 탄생전쟁, 색다른 전쟁을 할 수 있다. 색다른 살육, 게으름의 살육, 신세계의 건설을 위해 위해요소의 살육, 모든 개념을 바꾸자. 아무리 추악했던 전쟁을 계획하고 실행하고 살육한 사람들이지만 이제부터라도 또 다른 전쟁을 할 수 있다. 평화의 탑을 세우기 위한 전쟁에 모든 것을 걸어 보자. 깡패를 모르는 상태를 유지하는 일이 정말로 어려운가? 세블국을 세블국으로 만들자. 아무리 구두선을 외쳐도 소용이 없으므로 어떠한 조건에서도 피 비린내의 살육은 막아보자. 제발 그런 일이 세블국에서는 일어나지 말았으면 좋겠다. 농담이 아닌 진실로서 제1․2지하국가의 참변이 세블국을 침범하지 말기를 기원한다. 눈을 감은 채로나, 뜬 채로나 우리는 사람이므로 사람으로서 세블국을 만들어 죽음의 산을 이루는 바보는 되고 싶지 않다.
아직도 세찬 빗줄기는 그치지 않는다. 맑은 날에는 멀리까지 풍경을 구경할 수 있는데 장마가 계속된다면 당분간 눈요기도 못한다. 비야 멈추어라. 한마디에 장마가 그친다면 기적이라 할 것이다. 인간이 마음대로 못하는 자연현상을 자유자재로 통제할 수 있게 될 때 세상은 한층 바뀌게 된다. 바람을 불게하고, 비를 내리고, 초능력으로 병든 자를 치료케 하고, 원수를 사랑하도록 사람을 교육시킨다면 보통 일은 아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자. 가끔씩 역사 속에는 그런 일들이 나타난다. 알렉산더는 다리우스의 군대를 만나 도저히 비교가 안 되는 군사였지만 모두 죽을 각오로 선제공격을 감행하여 이겼다. 상식을 초월하는 6m의 긴 창을 이용했다. 32세의 나이로 죽긴 했지만. 믿음은 태산도 움직이기는 한다. ‘낙숫물이 섬돌을 뚫는’ 이치도 기적에 가까운 사실이다. 세블국을 만든 것도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렇지만 빗물에 실려 온 눅눅한 습기는 궁 안의 벽을 좁쌀 띠의 이슬이 송골송골 맺히게 한다. 방안의 온도를 높인다. 아직도 딸아이, 총독은 깨지 않는다. 창문 밖에는 바람에 애래우캐리야 나뭇잎이 떨어진다. 가는 줄기는 휘리릭, 찌리직 흔들린다. 밑둥치가 무지막지 굵은 받침들은 꿈쩍도 않는다. 울창한 숲을 이어서 만든 궁궐이다. 밑에는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는 언샘밭이다. 사람의 배설물, 빗물, 다른 저장된 물을 섞어서 물길을 따라 공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