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김동원
문득, 난 한 번씩 길을 가다, 나도 모르게 그만 중얼중얼거리며 문 열고 들어가 한참을 있다 돌아온다 빙글벙글 좋아서 돌아온다 그 신기하게도 졸랑거리며 하늘로 몰려가는 어린 솜구름처럼, 그 곳은 문득 한 번씩 길 가다 나도 모르게, 중얼중얼거리며 문 열고 들어가 한참을 있다 돌아온다
시는 목적지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은 데서 소요(逍遙)와 같다. 하여 장자는 ‘마음 가는 대로 유유자적하며 노닐 듯 살아가는’ 태도를 일컬어 ‘소요유(逍遙遊)’라 하지 않았던가.
5월의 신부 같은 햇살이 스며드는 무학산(舞鶴山)은 집과 근거리에 위치한 것도 있지만, 채우(彩雨, 김상환 시인의 호) 형과 함께 하는 터이어서 즐겨 찾곤 한다. 무학은 이제 우리에게 하나의 시의 장소place가 되어 있다.
에드워드 렐프에 의하면, ‘인간답다’는 것은 ‘의미 있는 장소로 가득한 세상에서 산다’는 것을 말한다. 무학산은 그런 장소감을 부여하는 곳이기도 하다. 오늘도 나는 형과 함께 아카시아 향기가 꽃처럼 피어나는 산의 둘레 길을 오르내린다. 빛과 소리, 색과 향이 차고 넘치는 산, 가까이서 멀리서 들리는 뻐꾸기 소리에 형은 곧장 워즈워스의 시 “뻐꾸기에 부쳐To The Cuckoo”를 이야기한다. 그리고는 ‘뻐꾸기 소리’가 곧 ‘뻐꾸기’라 말한다. 사물의 실재란 존재의 소리에 대한 응감(應感)에서 발현되는 법이다. 더러 생각이 막히거나, 또 다른 에너지를 얻고자 할 때면 나는 으레 이 길을 찾는다.
어느 날 산길에서 형은 “시경을 읽지 않으면 빼어난 말을 할 수 없다(不學詩無以言. 論 語, 季氏篇)”고 하여 시와 언어, 말과 사물의 관계를 강조한다. 나는 “마음속에 응어리진 분(憤)이 있으나 이를 펴지 않고서는 견딜 길이 없다.”고 한 굴원의『초사(楚辭)』를 시의 요체로 이야기했다.
발분 서정(發憤抒情)의 남상(濫觴)인『초사』, 그리고『시경』은 동아시아 시학의 양대 축이 아니던가! 소요의 산길은 언제나 서로의 생각을 좋이 받아주고 이어주고 간직한 채로다. 우리들의 시담에는 시는 물론, 색공과 유무에 관한 존재론과 프랙탈 구조, 카오스 이론 등등 따로 정해진 게 없다. 특히 형은 자연의 비의(秘義)와 묘오(妙悟)를 몸소 체득한 유협의 ‘풍격론(風格論)’과 창작 방법으로서 ‘통변(通變)’과 함께, 마음의 체(體)와 용(用)에 대해 곧잘 이야기한다. 그러면 나는 명시란 “조용히 생각을 모으면 천년의 세월도 불러올 수 있고, 천천히 얼굴을 움직이면 만 리를 내다볼 수 있다”고 화답한다.
누구나 산에 들어서면 허정(虛靜)한 마음이 되는 법. 나무를 높여 ‘격(格)’이라 한다면, 무학의 숲은 적어도 격물(格物) 혹은 관물(觀物)하기에 딱 좋은 시의 장소다. 하여, 나는 그 산을 산책하다 홀연히, 시「문득」을 얻었다.
김동원(사진)
약력
경북 영덕 출생.
1994년『문학세계』`시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1997년 제 1시집『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출간
2002년 제 2시집『구멍』출간
2004년 제 3시집『처녀와 바다』출간
2007년 동시집『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출간
2011년 시 에세이집『시, 낭송의 옷을 입다』출간
2014년 평론집『시에 미치다』출간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현, 한국시인협회, 대구문인협회원. 대구시인협회 이사.
『텃밭시인학교』시창작교실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