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환 작가- 대구출생 .대구성광고 졸업 .경북대 독문과 졸업 <주요저서>마음 중 단편 .대불(시집) .김대중 .한국전쟁 언저리 .금호강의 영혼(시집)
#매주 목요일 연재
지하세계 1
6. 세블국
지하국민들의 개인적 매장문화에 관해서는 지문위 부위원장도 어떤 묘안도 제출하지 않았지만 새로운 계획지하국가의 건축과정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기의 형상을 아주 조그맣게 만들어 그 위에 계속적으로 재료를 더 입혀서 여왕 모습의 토용을 만들므로 만들어진 구조물을 잘게 부수거나 얇게 벗겨나가면 속에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나오기도 한다. 많은 경우에 크기가 실제 사람과 동일한데 그 위에 더 입혀서 여왕의 서있는 상이 되도록 된다. 이것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모두들 이런 식으로 일을 하고 있다. 어느 정도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하여 만들어지고 있는 쪽에서 잘게 부수거나 얇게 벗겨보니 어김없이 동상 속에는 각 개인이 조각되거나 시간상 어려움이 있어 신경을 쓰지 못한 것들은 내부에 조형물이 숨어 있지 않다. 그렇다고 불순물을 첨가한 것은 아니다. 다만, 있는 재료로써 가장 손쉬운 자신의 모습을 후다닥 그려서 만들고 그 위에 또 다시 여왕모습으로 정해진 일을 한다. 그러면 모두 다 부숴버리고 속에까지 검증을 거쳐서 개인적 조각을 억제하다간 오히려 계획지하도시를 불량화 되는 쪽으로 기술적 사보타지를 할 수 있고, 도를 지나치면 도리어 역으로 쿠데타도 발생하므로 그대로 인정한 채 시공을 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기에 묵시적 동의아래 문책성 인사나 일부러 파괴한 후 재시공하지는 않는다. 개인이 이룰 수 없는 소원이 땅속에 묻혀서 숨어 있는 상태로 실현이 된다. 8억의 모든 사람의 모습으로 동상을 만들어 묻지도 못하지만 현명한 방법으로 그들의 존재의의도 남기곤 한다. 이제는 지문위 부의장도 이해하게 되어 속에 조각하는 인물은 자신이나 가족, 8억의 제1지하국가 사람이면 누구든 무방하다는 암묵적 동의를 해준다. 아울러 사람만이 아니라 상상속의 기계이던, 실제의 동물이던, 과거 지구에 생존한 식물이던, 어떤 삼라만상이라도 외형적으로 나타나지만 않으면 내부에 만들어 넣을 수 있는 묘지건설 노동자들에게 작업의 일부나마 자유를 허용한다. 거기에 덧붙여 약간의 의무규정이 부과된다. 8억 명의 제1지하국민의 얼굴 및 몸의 형태 중 묘지건설 노동자의 숫자와 나누어 각 개인에게 만들어야 할 양을 준다. 반발이 생겼지만 100% 달성은 아니라도 1/50 수준만 이행하면 문책을 하지 않는다. 비이성적 발상이지만 8억의 사람 중 1/50은 자신의 분신과 비슷한 사람 모양을 지하층에 퇴적시키게 된다.
붉그스레 어둑한 조명 속에 침대의 탄력은 폭신폭신하다. 몸집이 크고 근육이 탱글탱글한 남편과 발가벗고 한 덩어리가 되어 있다. 총독은 정력이 왕성한 남편과 방사를 늘 즐긴다. 날씨가 무척 좋은 날은 낮에 뜨겁게 달구어지는데 익숙하다. 밝은 침실에서 한낮에 훌륭한 그이의 육체를 탐스럽게 소유할 수 있음은 괜찮은 소일거리다. 욕정에 불타던 남녀가 한바탕 분기탱천한 물줄기를 쏟아내고 나면 후련한 마음과 육신에 달콤한 잠이 온다. 이제껏 무리 없이 순탄한 길을 걸어왔다. 제2지하국가에 부임하여 미지의 분야에서 빛나는 업적도 쌓이고 한 계단 한 계단 탄탄한 나라가 되고 있다. 처음에 총독의 일을 맡길 때 도저히 할 수 있을까? 의심도 되고 여왕도 그 직책을 충분히 헤쳐 나가므로 자신도 큰 차이는 없으리란 예감도 들었다. 이제는 더 좋은 조건으로 똑같은 수준의 직책으로 합동적인 삶을 살아가자는데 수긍이 안 되는 부분도 많다. 여러모로 자기는 임명직이며 제이차적 사실로의 접근 방책인데 무슨 연고로 제일차적 서열화 시킬까? 란 의문이다. 인구구성 면에서나 국가발전단계, 총체적 힘의 우위에서 너무나 표시가 드러난다. 다른 꿍꿍이 속셈이 내포된 것이 있다. 그렇게 여겨진다. 제1지하국민들에게 희망의 불빛을 선사하려고 그랬을지, 제1지하국민 중에서 위협적인 세력의 성장으로 견제세력의 필요성인지, 순수한 의도인지, 아무런 정치적 계산이 포함되지 않은 단순결정인지, 정확한 해답은 찾아내지 못한다. 설핏 잠이 깨니 두 팔로 남편의 온몸을 꼭 껴안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나타난다. 두 다리는 쩍 벌려서 남편의 아래쪽을 둘러 감고 있다. 내 남편이 살아가는 동안 나의 어려움에 든든한 방패막이 될 것이다. 그런 마음이 든다. 어쨌든 남보다 마음이 끌어당겼기에 같이 살고 있는 것이다. 남편이 야심을 가지고 더 넓은 국가, 더 힘찬 세계에 뿌리를 내리고 그녀와 함께 같은 분야에서 이끌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상만사가 마음대로 될 수야 없겠지만 노력에 대한 상응한 보답이 돌아와야 살맛이 날 것이다. 국가란 괴물은 자꾸만 커지고 무한대의 영역에서 호령하기를 원한다. 통치자는 신의 영역으로 올라서 신권을 행사하는 자로의 절대영역에 들어서려 한다. 각 개인의 권리와 의사표현을 여러 가지 칼날로 피해버리는 교묘한 재주가 늘어간다. ‘절대비밀은 절대적으로 공개가 되고, 절대 권력은 필히 부패하게 된다.’는데 알 수 없는 권력집중, 권력화신, 왕권신수설, 신권에 대한 도전의 영역이 너무도 가까이서 어른어른 거린다. 욕망의 분화구에서 불이 붙는다. 아랫도리에 경련이 일어나고 달콤새콤, 알록달록, 서서히 고조되는 기운이 온몸을 뒤틀게 한다. 타오르는 육신의 노래를 받아드릴 우람한 남성이 곁에 있으니 쉽게 만족의 파도를 건널 수 있다. 폭풍우 치는 고독한 밤낮이 아니라 언제나 솟구치는 고동을 잠재우고 조용한 즐거움으로, 시원한 침실로, 아늑한 고향의 품으로 안길 수 있으므로 행복한 마음이 졸졸 샘솟는다.
오랜만에 보고서철을 뒤적인다. 제1지하국가와의 협정문도 있고 지하계획도시 건설추진도 보인다. 긴급을 요하는 표시가 된 서류에는 제1지하국가가 단독으로 지하계획도시의 밑바닥 층을 만들고 있으며 제2지하국가의 도움도 요청하지 않고 기술진의 파견이나 아무런 사전협의도 거치지 않은 채 계속 일을 추진하고 있으나 상부의 지침이 없이는 어떤 대응책도 실제로 사용할 수 없어서 거기에 대한 해답을 내려달라는 주문이다. 얼마 전에도 비서진에서 말이 많았는데 잊어버리고 있었다. 담당관을 파견하여 상세한 사항들을 알아오게 한다. 완전히 배제된 상태에서 일이 진행되고 있다. 총독은 여왕 앞으로 직접 연락을 취한다. 핫라인을 통하여 항의하자 여왕은 별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제2지하국가도 기술진이나 노동력을 제공해주면 건설 사업에 동참할 수 있으니 아무 염려 말라고 한다. 다만, 제2지하국가 건설도 힘들 텐데 인구도 많고 여러 면에서 부담이 가지 않는 쪽이 일을 많이 하는 것인 만큼 놀라운 일도 아님을 강조한다. 가능한 범위에서 기술진과 노동자를 파견한다. 건설현장에서는 독자적인 일을 시작하기가 곤란한 상태여서 제1지하국가의 건설 팀에 합류되어 전체공정 중에서 1/50에 해당되는 지역을 담당하게 되고 기술적 지도를 오히려 받아야하는 처지이다. 사람모양의 토용을 만드는 일인데 모두가 똑같은 여인이다. 어디서 본 듯도 하다. 제1지하국가 여왕의 모습이다. 토용 속에는 개인적인 이력이 적히고 전혀 관계없는 지하국민을 만들어야 한다. 전혀 신이 나는 일이 아니다. 일의 형태가 이러한 상태인 것이 상부로 알려진다. 자세히 검토해 보니 묘를 만드는 것 같기도 하고 제2지하국가로써는 깊이 개입하고픈 사항도 아니다. 이왕이면 토용의 모습을 총독으로 하고 안의 모양도 제2지하국민으로 바꾸려는 생각이 든다. 검허장 여왕 앞으로 연락이 온다. 제2지하국가가 책임지는 지역은 자체계획에 따라 총독의 토용으로 대체하고 안에는 제2지하국민을 새겨 넣겠다는 내용이다. 여왕은 몹시 기분이 상한다. 그렇게 되면 모든 계획이 뒤틀려지고 1/50의 엉뚱한 부분으로 채워지고 상징적 의미에 대단한 훼손이 일어난다. 기술적 문제는 정밀하게 재조정하면 되겠지만 참으로 받아들이기 불쾌한 제안이 된다. ‘궁둥이에 비파소리가 나도록’ 일을 성공시킨들 상대방은 ‘곁집 잔치에 낯을 내는’ 식이 되는데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그렇다고 일부러 제2지하국가의 의도대로 장단 맞추어 주기도 곤란하다. 총독의 의도대로 되지 않게 책략을 써야 하는데 뾰족한 묘수가 나오지 않는다. 온종일 궁리를 해봐도 골치만 아프다. 손쉬운 방법으로 지문위를 개최한다. 지문위 부의장도 정확한 안건을 알지 못하고 있다가 의장의 말을 듣고서야 이해한다. 회의는 비공개로 시작된다. 비밀투표 결과는 3:5로 5명의 지역행정관들이 제2지하국가의 편을 들고 만다. 검허장 여왕은 깜짝 놀란다. 이제는 여왕의 권위가 상당히 실추되었을 뿐 아니라 8명의 결정사항대로 일이 처리되는 상황전개가 자꾸 일어난다. 약간 민주적 절차가 포함되어 여왕 독단의 결정이 가로막히거나 곧바로 집행되기까지는 단계적 검증을 거치는 통치구조가 알게 모르게 전이되고 있다. 상대적 개념으로 정치적 파트너인 제2지하국가가 엄연히 존재하므로 실체를 인정해야 하는 단계이다. 예전처럼 결정과정이 단순화되지 못하고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지문위의 결정을 받아들임으로써 여왕은 자신의 묘 중에서 1/50은 총독이 섞여지게 됨을 기정사실화 한다.
제2지하국가의 집무실에서 총독은 자신의 안이 스스럼없이 시행되게 된 것은 좋았지만 고작 1/50의 능력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단히 마음이 상하여 어떻게 하면 제1지하국가를 능가할 것인가? 란 의문부호 앞에서 방법을 찾기 위한 생각들을 정리해 본다. 상대방 측에서는 새로운 영역에서 입지가 늘어나는 것을 싫어하고 있는 상황을 느끼지도 못한 채 양국은 오해의 불씨를 속에 감추고 한걸음씩 협조의 시대로 가고 있다. 우선은 인구가 많은 수준까지는 어려워도 대등하거나, 비교가 될 수 있어야 된다는 점을 깊이 새긴다. 제1지하국가의 과잉인구가 물밀 듯이 제2지하국가로 이동되어야 하건만 전혀 그런 느낌이 없다. 그렇게 빽빽하게 답답한 공간에 갇히어 사는 사람들은 그 자신의 능력부족이거나, 제1지하국가가 개입되어 이민속도에 제한을 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 고삐를 풀어버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제2지하국가는 제1지하국가의 이민국 직원들의 태도를 변화시키고 무료로 제2지하국가에서의 여행과, 이민을 올 경우에는 엄청난 혜택을 약속하여 회유와 설득을 신중하게 실천하지만 너무도 견고하게 구축된 세뇌공작과 체제의 경직성으로 효과가 나오지 않는다. 이번에는 제일 접촉이 빈번하고 같이 일하고 있는 묘지건설 노동자를 상대로 공작을 한다. 이민국 직원들과 똑같은 대우를 제시할 경우 너무도 황당하게 생각할 소지가 있으므로 반대급부의 수준을 1/3 정도로 줄여서 접근을 한다. 그래도 의심의 눈초리와 경계의 의사표시가 나타난다. 세상에 좋게 해주겠다고 해도 믿지를 않는다. 이성적 방법은 소득이 없으므로 비이성적이며 인격에 반하는 정책을 쓰기에는 양심이라는 문제에 직면하여 도저히 시행할 수 없다. 말하자면 급속하게 퍼지는 전염병을 퍼뜨려 제1지하국가에서 도저히 살 수 없게 되어 혼란과 죽음이 산을 이루고 혼비백산 다른 곳으로 스스로 떠나게 만들면 되겠지만 전염병 보균자들이 제2지하국가에 밀려오면 도리어 해롭게 된다. 공포에 질린 제1지하국민들이 이성이 마비되어 군사력을 적정수준 이상으로 무자비하게 사용한다면 제2지하국가로서는 ‘혹 떼려다 혹 붙이는’ 식이다. 원칙적으로 비이성적, 전쟁성격의 방법은 포기하게 된다. 지하계획도시를 건축하는 과정에서 제1지하국가의 노동자들을 도와주기로 방침을 세운다. 그들이 토용 속에 새겨 넣어야 할 지하국민의 모습들을 제2지하국가의 노동자들이 만들어주고 여왕의 모습을 겉에 나타내는 것도 해준다. 공짜로 제1지하국가 노동자들의 고생을 덜게 한다. 제2지하국가의 노동자들에게는 다른 보상을 약속한다. 그러므로 굳이 토용 속에 제2지하국가의 사람들을 새겨 넣을 이유도 없어지고 총독의 모습도 새길 의무도 사라진다. 총독은 땅속에 한층 정도만 표시가 나면 되는 것이지 32층까지 할 필요성도 크게 못 느끼고 현실적 접근을 통하기로 한다. 토용을 많이 만들어 넣는다고 당장에 좋은 일은 하나도 없다. 이것에 쓸데없는 수고를 하느니 제1지하국가 노동자들의 환심을 듬뿍 받아서 현세적인 결과가 바람직스럽다. 제1지하국가의 지문위 부의장은 사태의 심각성을 서서히 알아차리게 된다. 정말로 골치 아픈 고민이다. 제1지하국가의 묘지 노동자들에게는 절대로 많은 땅을 보장해 줄 수 없는 현실이 있다. 그런고로 제2지하국가의 노동자를 은연중에 부러워하게 되는데다가 더욱이 일까지 도와주니 시기심은 사라져 버리고 융합이 되어간다. 제2지하국가가 좋은 곳으로 인식하는 사태가 갈수록 부풀어지고 있다. 제2지하국가의 담당관은 획기적인 방안을 제1지하국가 노동자들에게 발표한다. 국적을 바꾸어 일을 하면 제2지하국가의 노동자와 똑같이 많은 토지를 주겠으며 기한도 빠를수록 좋다는 내용이다. 제1지하국가의 담당관은 사전통고 없이 외교적 문제를 쟁점화한 제2지하국가를 상대로 외교전쟁으로 일이 진척된다. 건설현장에서는 걷잡을 수 없는 물결로 제2지하국가의 이민국에 국적을 바꾸어버리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흥지모임을 주장하던 지역 행정관의 한 사람이 자기지역의 군대로써 이 이민행렬을 강제로 막기 위해 무력을 사용한다. 살벌한 상황의 연출로 노동자들의 사망, 부상이 속출하고 노동자들의 봉기가 일어난다. 흥지모임을 주장하던 지역 행정관은 사태가 너무도 험악하고 수많은 인명의 살상사태가 일어날 형편에 제정신이 아니다. 명령만 떨어지면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건설현장으로 뒤바뀌고 만다. 담당관으로부터, 부의장으로부터 군대를 퇴각시키라는 교신이 계속 들이닥친다. 지역담당관은 생각한다. 물러서면 노동자들은 제2지하국가로 가버린다. 물러서지 않으면 노동자들을 죽여야 한다. 그는 사람을 죽이기 싫다. 어쩔 수 없이 물러서 버린다. 그러자 묘지건설현장인 지하계획도시는 온통 제2지하국가의 아성이 된다. 총독을 외치는 자신의 나라 백성들, 그는 오장육부가 뒤집힌 듯하다. 세상이 뒤바뀐 것을 사흘이 지나서야 이해한다. 이런 사태가 생길지 모르니 흥지모임을 만들자 했건만 반대하여 이 꼴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더욱 분통이 터질 지경이다. 일이 진행되는 과정을 더 세밀히 관찰한다. 예전의 상태로 되돌릴 궁리를 짜내지만 묘책은 없다. 국경선에 접한 이 지역은 인구가 일억에 가깝다. 그 중 60%인 육천만 명이 지하계획도시로 평화행진을 한다. 이제는 아무런 무력을 동원할 수 없다. 제 발로 걸어가는 육천만 명을 죽일 수도 없고 속수무책이다. 이 도시는 40%의 인구만 남고 예전보다는 쑥 기운이 빠져 버렸지만 실제상에서 2배의 땅으로 넓혀지지도 못했다. 사람이 차지할 수 있는 공간은 배 이상 늘어나므로 훨씬 좋아졌지만 도시의 생산력, 모든 상황은 줄어들었고 여차하면 새 땅으로 가버린다. 지하계획도시는 이제 두께를 10층 다져 놓았는데 앞으로 22층을 더 다져야 설계상 완전한 도시기능을 할 수 있다. 이주해온 육천 만에게 22층을 더 쌓아야 한다고 설명을 해줘도 도무지 듣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지반을 약하게 만들어 오염물질이 통과하게 되고, 질소진공 부력완충군으로 기능이 어려워 무너져 버린다는 간절한 경고가 무시된다. 이래도저래도 사람들은 말을 듣지 않아 경고문을 뿌리고 방송하게 된다. 기간은 넉넉하게 주고 그 때까지 원래의 지역이나 제2지하국가로 피신하지 않으면 계획지하도시 사람을 몰살하겠다고 한다. 그제야 겨우 십만 명의 사람이 움직인다. 할 수 없이 제1․2지하국가의 연합군대는 오천 구백 구십만 명의 사람을 죽이게 된다. 11층의 지층은 오천 구백 구십만 명의 시체로써 뒤덮이게 되고 다시 층을 다져 쌓아야 하는데 그 누구도 지원하는 노동자는 없다. 저주의 땅이 된다. 흥지모임을 주장하던 지역담당관은 제 발로 걸어가던 육천만 명의 자국민을 군대로써 백만 명을 죽이고도 돌아서게 했다면 이처럼 많이는 죽지 않았을 텐데 그런 생각도 든다. 세상일은 너무도 알 수 없는 비이성적인 방법으로 끝났다. 제2지하국가는 제1지하국가의 묘지 노동자들에게 땅을 많이 준다는 말을 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결과적으로 땅을 많이 받으려는 마음과 자국민을 불리려는 마음이 어처구니없게도 엄청난 죽음으로 몰아갔다. 시간적 여유를 더 주면서 경고를 계속했더라면 이렇게 까지는 가지 않았을 텐데. 시체에서 역병이 돌기 전에 빨리 흙을 뿌리고 약품을 뿌리면서 묻어야 한다. 양 군대는 신속하게 살아있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제일차적 조치를 취한다. 토용이고 뭐고 따지는 일도 발생하지 않고 군대로써 시체가 쌓인 땅을 재빨리 단단한 지층으로 만든다. 앞으로 21층의 두께만 쌓으면 된다. 사정이 이쯤 되어서야 제1․2지하국가는 서로가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한 외교 분쟁에 휘말린다.
양 국가는 서로의 잘못을 내포하고 있다. 제2지하국가는 이민으로 국민을 늘리려는 의도를 분명히 실천했고 제1지하국가는 이민을 강제적인 수준까지 억압했다. 세세하게 따져갈수록 나쁜 점들만 드러나므로 제2지하국가는 외교채널을 통해 사과성명을 밝히게 된다. 제1지하국가 국민들은 그 많은 희생이 제2지하국가의 일방적 잘못으로 생긴 일이란 국가적 설명 앞에 고개를 갸우뚱 의심의 심리상태이다. 앞으로 21층의 두께를 쌓아올리는 협상에서 상대방의 속셈을 파악하느라 회담은 중단되고 시간을 질질 끈다.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는 나날이다. 제2지하국가는 건설현장에 섞여 있는 군대를 철수시키고 그들의 요구조건을 한 가지도 제시하지 않는다. 제1지하국가의 지문위 위원들과 담당관은 예전의 경우를 생각하여 헛일 일망정 묘지건설에 참여해달라는 외교적 공문을 띄워본다. 참여할 의사를 내보이면 1/25 수준의 영역을 맡길 계산을 한다. 막상 이 제안을 받은 제2지하국가의 담당관과 총독은 아무런 답신을 보내지 않는다. 껄끄러운 관계이다. 1/25의 영역을 비워두고 작업을 해야 할 21층의 두께 중 10개의 층을 이번에는 속에는 여왕의 모습을 넣고 겉에는 병사들의 모습을 입혀서 토용을 제작한다. 민간인 노동자는 없고 모두가 군인들이다. 애국심이나 돈에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명령에 의무적으로 움직인다. 2층을 더 쌓아올리자 쌓아올리지 않은 1/25 영역이 문제가 되니 또 한 번 더 제2지하국가에 외교서신을 띄운다. 참가하여 제2지하국가의 몫을 처리하여 공동의 노력으로 해보자는 제안이다. 또 답신이 안 온다. 일을 진척시키기 위해선 그대로 놔둘 수 없으므로 건설현장에서 죽은 노동자들, 이주하여 죽은 사람들, 차례를 정하여 1/25 영역에 토용을 만들어 넣는다. 모두 만들어 넣지는 못한다. 계속 층을 입히는 건설과정에서 또 협력하여 같이 하자는 외교적 노력을 해본다. 무위로 끝나자 남아 있는 층에 오천 구백 구십만 명의 죽은 사람들 토용을 만들어 넣을 계획으로 일을 한다. 층을 자꾸 쌓아가는 중이다. 이제까지 작업을 하던 군대를 후방지역으로 되돌리고 신규병력으로 대치한다. 너무 지치고 재미없는 일에 장기간 투입하였기 때문이다.
25층까지의 작업에서 한 층은 사람의 시체이고 나머지 층은 계획지하도시 전체에 밑그림이 들어갔지만 10층까지는 아주 정확하고 그 위층으로는 병사들의 모습이 새겨 넣어진 상태이다. 전체 32층으로 높이 제작되는 토용은 2/3까지 완성된 단계에서 11층 부분은 다르게 퇴적이 되었으나 나머지 1/3부분은 죽은 사람들로 채워진다. 이것은 속에 32층으로 이루어진 토용에서 겉으로 1/3의 그림이 여왕으로 만들어졌다. 1/3은 병사이고, 1/3은 죽은 사람들이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세로의 10층 두께 내부는 묘지 건설 노동자의 토용의 여러 가지 모습이 들어갔고, 11층은 시체, 12층에서 22층까지는 검허장 여왕의 토용이 들어갔다. 겉의 모습은 10층까지는 여왕의 모습, 12~22층까지는 병사의 모습으로 구성되었는데 나머지 1/3은 내외부가 똑같이 죽은 사람 모습이다. 계획도시 전체에 32층으로 만든 전체의 겉모습은 이상야릇한 모습이 될 것이다. 나머지 두께가 완성이 가까워올수록 계획지하도시의 땅의 배분문제가 다시 떠오르고 혹시 재현될지 모르는 악몽으로 인해 여러 번 검토를 한다. 제1지하국가 국민을 상대로 일체의 홍보나 기대심리를 부추기는 일은 하지 않는다. 제2지하국가는 아예 그들의 의도를 나타내지 않는다. ‘쌀독에서 인심 나는데’ 제1지하국가로서는 진정하게 제2지하국가를 도울 능력은 없다. 그래도 완전하게 무시하기는 곤란하여 1/50~1/25사이의 수준에서 지하계획도시의 땅을 양보하여 제공하여야 한다는 신중론이 나온다. 너무도 심한 대가를 지불한 땅이 완성된다. 더 많은 땅을 가지고 싶은 욕망이 오천 구백 구십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그 위에 세워진 한 많은 신천지이다. 아무도 오지 않는 땅에 누구를 제일 먼저 거주시켜야 하나? 군대는 그대로 주저앉아 있고 죄수들을 강제로 이주시킨다. 몽땅 옮겨도 얼마 되지도 않는다. 거리의 구걸자, 부랑아들을 모두 새 땅으로 이주시킨다. 그래도 모자란다. 역사적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이곳에 와보고 대단히 살고 싶어 하지만 세세하게 다 알고 있는 일반인들은 많은 혜택을 제공한다 해도, 그런 선전도 하지 않지만 섣불리 접근조차 않는다. 국가정책상 가장 나은 집단을 이주시켜 멋있는 도시를 만들려던 발상은 멋있는 도시에 가장 못한 계층이 살고 있다. 제2지하국가에게도 공식적으로 제공된 1/30면적에 그들의 국민이 이주하여 살기 시작한다. 속셈을 잘 알 수가 없다. 오히려 상황이 역전되어 제2지하국가가 차지한 곳은 인구가 조밀하고 땅의 배분이 적고 거주하는 계층은 훨씬 나은 사람들이다. 제1지하국가의 몫인 나머지 땅에는 올바른 시민권을 행사하기 곤란한 부류들이 듬성듬성 너무도 넓은 땅을 소유하고 있다. 제1지하국가는 약간 이상한 정신구조가 남아 있다. 하루아침에 범죄자가 없는 세상이다. 거지도 없다. 군대도 눈에 띄지 않는다. 늘 골칫거리였던 것이 쑥 빠져버려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는 듯하다. 매일 시비를 걸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시비를 부리러 오지 않으니 속이 후련하다가 왜 그럴까? 더 큰 시빗거리를 가지고 있나? 제풀에 주저앉았나? 궁금하기도 하다. 남아있는 지하국민들은 너무도 고분고분한 사람들이다. 죄를 짓지도 않고 거칠게 항의도 않는 쪽이다. 어쩌면 제일 순응집단이면서 기회주의자들이기도 하다. ‘드는 돌에 낯 붉는다.’는 생각으로 행정을 펴는 입장에서 이러한 순응체질 집단을 만나면 아무래도 긴장이 줄어든다. 행정관들도 사람인지라 득롱망촉인데 게으름을 피우게 될 확률이 높다. 지하계획도시로 이주민을 선발하기 위해 모호한 기준을 만든다. 애국심이 부족한 국민, 부지런하지 않은 국민, 건강하지 못한 국민, 수백 가지 지침을 만든다. 죄목이라기보다도 우스운 규정들이다. 그래도 이주민 숫자가 적으므로 마을 전체나 소규모 도시만을 이주시킬 방법으로 동민이나, 소규모 도시민의 단결심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몽땅 이사를 시키기도 한다. 담당관과 지문위 부의장은 새로운 지하계획도시로의 이주방법이 무지막지하고 반발의 소지가 다분함을 느낀다. 제2의 살육이 다시 발생한다면 목숨이 위태롭다는 사실이 앞을 가로막는다. 이 점을 관리들도 인식을 했는지 이주속도가 지지부진하거나, 명령을 거부하고 달아나버리는 사람도 부지기수이다. 국법의 시행이 엉터리이다. 이러한 지경에도 고분고분 국법을 지키고 따라오는 지하국민들이 더 많다. 분통이 터지기는 젊은 층에서도 그렇다. 국가의 앞날을 짊어진 집단의 생각조차 이러하다. 분노하지 않는 지하국민들이다. 반항하지 않는 지하국민들이다. 이리 끌면 이리 끌리고 저리 끌면 저리 끌려 다니면서도 불평불만 한마디 하지 않고 쥐 죽은 듯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제1지하국가를 지탱하는 지주란 말인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아니면 자기보신의 생득적 체험으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피동적 자세를 취하는 것인가? 완전히 자기주장을 버린 사람들이다. 자유를 향유하는 훈련도 없고 자기주체성을 결여한 집단이다. 대부분의 지하국민들이 영웅도 아니고, 초인도 아니고, 막강한 권력자도 아니고, 무력하기 짝이 없는 개인이다. 지하국민 한 사람이 얼마나 큰 능력을 가졌으며,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가졌으며, 얼마나 많은 정신적, 육체적 힘이 있겠는가? 개인은 너무도 왜소하므로 국가권력에 대항할 힘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힘없이 순응 체질화되어 아니라고 한 번도 소리 지르지 못하는 지하국민이 그래도 현명하게 파탄을 면한 채 질기게 살아가고 있다.
검허장 여왕은 자신의 나라에서 불행한 일들이 끊이지 않는데 대하여 특별한 대책이 없다. 강력한 반대집단이 약간의 무력만 동원하여 민심을 동요시키면 여왕의 지위가 추락되고 만다. 이처럼 불안한 나날이며 희망적인 낌새를 찾아보기 힘들다. 제2지하국가의 내부사정을 어느 정도까지 파악하고 있지만 총독이 쫓겨나지 않은 것을 보면 위태위태하게 안정을 취하고 있음이라 여겨진다. 잘살아 보자는 운동과 계획이 얼토당토않게 죽음으로 해결되다니 너무도 허망한 인생이다. 여왕의 자리를 내던지고 싶은 심정이다. 사람은 어차피 죽는다. 천수를 누리고 자연 상태로 그대로 죽으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고 생목숨이 끊어지는 일이 생겼다. 그것도 여왕의 권위를 세우는 억만 년의 화석으로 남길 묘지건설에서 그러면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인가? 가장 본질적 원인제공자는 여왕이다. 묘지를 만들지 않았다면 그런 일이 애초에 생기지 않았다. 누가 일이 그런 식으로 처리되고, 일어날 줄 예측할 수 있었는가? 당하는 대로 사는 것이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처음부터 되돌아가 여왕이 왜 되었는가? 예전의 지구에 살 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나? 그렇지 않다. 얼떨결에 생존한 지하국가에서 어린 나이에 여왕이 되었다. 무목적적이며 예정된 수순에 의한 일이 아니었다. 오천 구백 구십만 명의 죽음도 예정된 일이 아니었고 무슨 목적을 가지고 살육한 일이 아니었다. 불가항력적 천재지변이었다. 변명을 하지만 그것은 엄연한 사람의 잘못이다. 자연의 잘못이 아니다. 그런고로 여왕은 책임을 져야 한다. 왜 여왕이 그 일을 모른 체하느냐? 온갖 소리가 궁궐 안에서 메아리치는 듯하다. 용상에 앉아 있으니 알 수 없는 마귀가 온몸을 할퀴듯 달려든다. 이 귀신들은 개인으로 움직이지 않고 모두 집단적이다. 몰려오는 것도 우루루꽝 소낙비처럼 쏟아지고 번개가 치면서 천둥소리를 울리는 수천만 명이 울부짖음을 친다. 해골바가지들이 다다닥다다닥, 투뚱투뚝뚱, 궁궐에 떨어진다. 순식간에 궁궐의 벽을 넘어서 주루루주루루 산을 쌓아 올린다. 웬 뼈다귀들이 몽땅 남자들 것이다. 뼈다귀가 굵고 우람한 것들이며 땀 냄새가 코를 찌르다가 썩은 냄새가 천지를 진동한다. 몸에 열이 솟아오르며 땀이 곤룡포에 흠뻑 젖고 다리에 힘이 쭉 빠지면서 정신이 아찔아찔하다. 제발 내 아들아, 딸아, 남편이 나타나길 바라지만 이번에는 피를 토하며 피비린내를 풍기는 시체들이 가슴에 달려들고 수없이 어전 주위로 떨어지고 핏물이 뚝뚝…… 온 세상이 피바다가 된다. 미칠 지경이다. 아무리 일어서려고 하여도 묵직한 덩어리가 몸을 끌어당겨 주저앉힌다. 팔다리에 걸쳐서 사방으로 끌어당기는 덩어리들은 모가지가 뎅강뎅강 잘리고 팔다리가 없어진 피가 질질 흘러내리는 몸뚱이들이다. 퍼더덕퍼더덕 그릴수록 무서움에 소름이 돋는다. 한참을 지나자 피가 다 빠져버린 살점덩어리가 힘이 줄어들어 여왕의 몸을 덜 할퀴는 듯하다. ‘저는 죄인입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다가 목이 쉬고, 눈물이 마르고, 기력이 쇠하더니 앞으로 폭삭 고꾸라진다. 아무도 부축해주는 사람이 없다. 아무도 위로해주는 사람이 없다. 아무도 옳다고 하는 사람이 없다.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아무도 칭찬해주는 사람이 없다. 아무도 편안한 곳으로 옮겨주는 사람이 없다. 아무도 쳐다보는 사람이 없다. 아무도 말을 건네는 사람이 없다. 아무도 업고 가는 사람이 없다. 아무도 물 한 모금 주는 사람이 없다. 아무도 나타나는 사람이 없다. 아무도 울지 않는다. 아무도 여왕 편이 아니다. 아무도 고통을 대신해주지 않는다. 아무도 아픔을 같이 해주지 않는다. 아무도……, 아무도……, 사람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