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태순 정치평론가 |
참, 우연의 일치다. 69년 전인 1948년 5월10일 우리 국민들은 난생 처음으로 투표라는 것을 했다. 일제로부터 광복된 지 3년,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한 헌법을 만들 국회의원들을 뽑았다. 당시 우리 국민들의 새 조국 건설의 열망은 뜨거웠다. 투표율이 무려 95.5%나 됐다. 69년이 지난 오늘 5월10일 대한민국은 새 대통령을 뽑았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고 있다.
이번 대선은 헌정 69년 만에 현직 대통령을 탄핵하여 파면한 뒤에 치러진 그야말로 응급조치 성격의 선거였다. 유권자의 입장에서는 충분한 검증과 냉철한 판단의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또 새 정권의 입장에서도 비전을 충분히 가다듬을 시간이 부족했고, 더욱이 전임 정권과의 인수인계 과정도 없이 바로 국가운영에 들어가야 하는 엄청난 부담을 안고 있다.
지난해 10월24일부터 시작된 혼란과 혼돈, 대립과 갈등, 우리는 반년이 넘는 기간 너무나 큰 비용을 치렀다. 이제는 그동안 허송한 시간과 에너지를 벌충하기 위해서라도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야 한다. 만에 하나라도 감정의 찌꺼기가 남아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반목한다면 지난 반년의 허송은 무의미한 일이 되고 말 것이다.
국민통합. 지금만큼 이 말이 절실한 적이 있었던가. 갈가리 찢긴 민심을 추슬러야 한다. 새 정권의 역할이 정말 막중하다. 승리의 팡파르를 울리되, 패배한 측의 서운한 마음을 달래려는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패배한 측도 마찬가지다. 선거결과를 겸허히 인정하고 새 정권이 빠르게 정착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할 것이다.
국민통합을 위해서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이다. 같음을 추구하되 다름도 인정하는 자세 말이다. 이는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지난 정권에 문제가 되었던 블랙리스트니 뭐니 하는 것도 바로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독선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니 갈등과 대립은 격화되고 결국 스스로를 갉아먹는 꼴이 된 것이다.
약팽소선(若烹小鮮). 국가를 경영할 때는 마치 작은 생선을 굽듯이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말이다. 무슨 바람몰이하듯이 국가를 운영하게 되면 너무나 많은 국민이 상처를 입게 된다. 특히 현재 여소야대의 정국에서 너무 강하고 거칠게 국정드라이브를 걸게 되면 야당은 강력히 저항하게 되고, 결국 국정은 교착상태에 빠지게 된다.
말(馬) 위에서 나라를 얻을 수 있으나, 말(馬) 위에서 나라를 다스릴 수는 없는 법이다. 정권을 잡기 위해서 그동안 때로는 편을 나누고 또 때로는 상대방에게 모진 말도 서슴지 않았을 것이다. 상대방을 꺾기 위해서 우리들끼리 똘똘 뭉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권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한때 적이었다 할지라도 포용하고 안아야 한다.
국가운영에는 연습이 없다. 새 정권은 오늘부터 바로 대한민국호의 키를 쥐고 거친 파도를 헤쳐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그 와중에 우리에게 현실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다. 안보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지혜를 모으고 국민들의 하나 된 마음을 끌어내야 할 것이다.
오늘 새 출발을 하면서 대선기간 중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했던 개헌문제를 잊어서는 안 된다. 현행 87헌법 아래서 역대 대통령 모두가 불행한 일들을 겪었다면 이는 사람의 문제이기 이전에 제도의 문제라는 점에 대해서 대다수 국민이 공감하고 있다. 이번에는 응급조치로 대선을 치렀지만 이번 정권 내에 새로운 헌정의 틀을 만드는 문제에 대해서도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지나간 모든 것은 서막(序幕)에 불과하다. 69년 전 우리들의 선조가 그러했듯이 이제 국민 모두가 하나 된 마음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재건해야 한다. 그 앞자리에 서는 대통령의 마음가짐이 정말 중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