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순 정치평론가 |
하지만 필자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약한 유방이 어떻게 강한 항우의 군대를 이겼는지에 눈이 간다. 이 시장의 방점이 ‘왜’에 있다면 필자의 방점은 ‘어떻게’에 찍힌다.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19대 대선을 앞두고 너무나 당연한 관심이다. 사기(史記)를 죽 읽다보면 답이 나온다. 민심을 얻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실제 전쟁에서 승리를 결정지은 것은 바로 연합의 힘이다.
항우의 군대는 말 그대로 천하무적이었다. 진나라의 수도인 함양을 함락한 뒤 3세 황제를 처형하고 아방궁을 불살랐다. 항우에 비하면 유방은 미약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유방은 비록 유인책이라 할지라도 법삼장(法三章) 등 유화책을 쓰면서 민심을 얻는데 주력했다. 그리고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제후들을 엮어서 연합군을 형성한다. 마침내 승리를 거둔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결정이 있기 직전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가 탈당했다. 박 전 대통령의 파면이 결정된 뒤 김 전 대표의 행보는 종횡무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과 문재인 전 대표 측을 빼고는 과거의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언론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서 킹메이커가 아니라 킹이 자신의 목적지임을 거리낌없이 드러내고 있다.
김종인 전 대표의 구상은 나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분권형 개헌을 고리로 국회선진화법을 극복할 수 있는 180석 이상의 의석을 확보한 연합정권을 구상하고 있다. 그래서 빅4(대통령, 국무총리, 경제부총리, 사회부총리)가 키맨이 되고 대통령은 코디네이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할 수만 있으면 이번 대선 전에 개헌을 추진하고 아니면 개헌의 약속이라도 하자는 것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개헌을 추진하고 내년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를 통해 새로운 헌정의 틀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2020년 21대 총선에 맞춰 제7공화국을 출범시킨다. 그러면 이번에 당선된 새 대통령은 3년으로 임기를 단축하는 것이다. 1997년 김대중-김종필의 DJP공동정권 때와 같이 대국민 공약으로 이를 담보하고 추진해보자는 뜻인 것 같다.
그런데 김종인 구상에는 세 가지 허점이 눈에 띈다. 첫째, 지금 절대적 대세를 형성하고 있는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에 반대하는 것만 으로는 명분이 약하다. 김 전 대표는 친문-친박의 패권구도에 대항한 비패권지대를 구상하고 있다. 하지만 누구를 반대하는 것이 명분이 될 수는 없다. 김 전 대표가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해서 강력한 불신을 갖고 있겠지만 그것만 갖고는 부족하다.
둘째, 지금 민주당도 문재인 전 대표도 개헌을 하지 말자고 한 적은 없다. 다만 현실적으로 이번 대선 전에 개헌을 하기가 힘드니 정권교체 이후에 하자고 주장한다. 물론 실제 집권한다면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는 문 전 대표의 주장과 김 전 대표의 주장의 차이가 무엇인지 쉽게 와 닿지를 않는다.
셋째, 연합군의 필요성에는 모두 공감하지만 서로 자기가 대장이 되려하는 것은 아닌지. 김종인도 손학규·유승민은 물론이고 결국 연합의 또 다른 핵심인 안철수 전 대표도 모두 자기중심의 그림을 그릴 것이다. 자칫하면 사공 많은 배가 산으로 올라갈 가능성만 높아진다.
혹시 김종인 전 대표가 유방이 “일패도지(一敗塗地), 대장을 잘못 뽑으면 패하여 다시는 일어설 수 없다”며 짐짓 대장 자리를 양보했지만 결국에는 연합군의 맹주가 되었던 선례를 따른다면 모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