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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구 편집인<전 매일신문 편집국장> |
한해가 저문다. 이맘때쯤이면 누구나 한번 씩 쓰는 말이 있다. 다사다난(多事多難)이다. 다사다난하지 않았던 해가 없었겠지만 올해만큼 다사다난이란 말이 잘 어울리는 해도 드물 것이다. 그래서 올 연말은 우울한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지금도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서민들은 이런 불확실성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데 더 불안해한다. 국회는 최순실 사태의 진상을 캐기 위한 청문회로 연일 요란하다. 주말마다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촛불시위가 정례 공연처럼 열리고 있다. 이에 맞선 보수단체들은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태극기 집회로 거리를 헤집고 다니고 있다. 장외 정치가 유행처럼 되어 버렸다.
국회의 탄핵 가결이후 보수와 진보간의 갈등의 골은 더 노골화되고 있다. 장차 이런 국민적 갈등이 국가에 어떤 부담을 가져다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심각한 불안 요소라는 데는 부인치 않는다. 이 모든 것이 국회가 제대로 된 정치를 못한 탓이다.
황교안 대통령 대행체제가 간신히 유지되고는 있으나 국가 리더십이 위기에 봉착한 상황인 만큼 국가적 불안감이 주는 피해는 막대하다. 피해자는 국민이다.
대구시내버스 요금과 도시철도 요금이 연말부터 인상된다. 도시가스 등 공공요금의 인상이 러시를 이룰 전망이다. 라면, 계란 등 생필품 가격도 뜀박질 한다. 서민들의 지갑은 얄팍해지는데 물가는 치솟을 모양이다.
우리나라 30대 그룹에서 올해만 1만4천명을 감원했다고 한다. 명예퇴직과 희망퇴직으로 직장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 서민을 상대로 한 업소들이 장사가 안 돼 비명을 지르고 있다. 가계부채는 늘어나는데 미국의 금리 인상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금리도 오를 모양이다. 은행 빚을 갚아야 할 서민들이 안절부절 한다.
불황심리로 서민경제가 휘청하고 있다. 전국의 절반의 가정이 200만원 미만의 돈으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경제 선진국에 들어섰다는 한국이 왠지 불안하다.
국가를 이끌어 가야 할 한국의 리더십은 지금 무얼 하는지 궁금하다. 정치인들은 서민들의 애타는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권력 놀음에만 몰두하는 것 같다. 대선을 앞두고 정파 간 이해득실만 따지는 모양이다. 경제는 안중에 없다. 경제가 어렵다 해도 경제문제를 심각하게 논의해 보겠다는 정치인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 정치가 왜 3류라고 손가락질을 당하는지 조금 알 것 같다. 국회를 해산해야 한다는 말도 시중에는 자주 나온다. 국민이 정치인을 뽑지만 옳지 않다고 생각될 때 대응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도대체 정치인은 무얼 걱정하고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모르겠다는 불평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서민의 민생고(民生苦)는 누가 해결해 줄 건지 대답이라도 들었으면 좋겠다는 푸념들이 많아졌다.
‘정치가 뭔지’ 제(濟)나라 선왕(宣王)이 맹자(孟子)에게 물었다. 맹자는 “백성들이 배부르게 먹고 따뜻하게 지내면 왕도의 길은 저절로 열리게 된다”고 말했다. 백성들의 민생고를 들어주는 것이야 말로 정치를 하는 첫 번째 이유라는 설명이다.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 “일정한 생산이 없으면 일정한 마음도 없다”는 말로 의식주의 중요성을 나타낸 표현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곳간이 차야 예절을 안다”는 말과 비슷하다. 맹자는 백성들이 떳떳한 살림이 없으면 방탕, 부정, 탈선, 괴벽 등의 악을 저지른다고 했다. 서민들에게 경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치는 정치 교훈이다.
지금 우리의 정치는 국민의 이름을 앞세우고 있으나 국민이 진정코 바라는 바를 외면하고 있다. 그들은 국민의 이름을 대고 자신들을 위한 목적 정치만 하고 있다. 국민들의 아픔을 아는 척 하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민생고는 누가 걱정할 것인지 정말로 두려운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