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풀
박용래
남은 아지랑이가 훌훌
타오르는 어느 驛 構
內 모퉁이 어메는 노
오란 아베도 노란 貨
物에 실려 온 나도사
오요요 강아지풀. 목
마른 枕木은 싫어 삐
걱 삐걱 여닫는 바람
소리 싫어 반딧불 뿌
리는 동네로 다시 이
사 간다. 다 두고 이
슬 단지만 들고 간다.
땅 밑에서 옛 喪輿 소
리 들리어라. 녹물이
든 오요요 강아지풀.
가장 한국적이고 가장 토속적인 서경과 서정을 절묘하게 노래한 시인을 들라면, 만경 강가에서 이스락과 늙은 표모(漂母)의 방망이 소리와 물총새와 놀던 새장 속 시인 박용래가 있다.
호남선이 지나가는 기적 소리에 취해 진정 이승의 설움이 뭔 줄 알았던 그는 1925년 1월 14일(음) 충청남도 논산군 강경읍 본정리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시는, 1960년 이전 한국 서정과 서경을 동양적 달관을 통해 수준 높은 경지로 끌어올린 초기 목월의 선적(仙的)·향토적 세계와는 달리, 장터·기적 소리·싸락눈과 이름 없는 들꽃과 들풀에 더 애정을 쏟은 농촌 현실 정서의 한 출발점을 찍었다.
한 마디로 그의 시는 한국 토속 정서를 미학의 눈길로 집요하게 추적해 우리 산야의 리듬에 버무려 낸 6,70년 대표적 서정시다.
「강아지풀」은 우리나라 들녘에 흔히 보이는 저 귀여운 강아지풀을 소재로 남은 아지랑이 타오르는 환각 같은 봄과 작은 시골 기차역의 풍경과 70년대 이농의 현실을 박용래는 탁월하게 보여준다.
박용래다운 짖궂은 기발한 행갈이와 소품 시에서 보기 힘든 상상적 깊이와 시적 모호성이 잘 절제된 시「강아지풀」은 69년『월간 문학』12월호에 발표되었다.
툭하면 하루 종일 눈물을 흘리며 지나가는 호남선 기차를 물끄러미 쳐다만 보았다는, 쉰다섯 아까운 나이에 생을 마감한 박용래의 삶과 시는 너무나 닮았다.
경제 개발로 촉발된 70년대 이농 현상은 그 당시 농민들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런 사회적 현상을 시인은 시「강아지풀」에서 "삐걱삐걱 여닫는 바람 소리"로 기막히게 잘 형상화 하였으며, 한발 더 나아가 이별의 상황을 "반딧불 뿌리는 동네로 이사 간다"고 교묘히 역설로 바꿔 놓음으로써 언젠가는 도시로 떠나간 사람들의 농촌 회귀를 시인의 직관으로 예견한다.
세상 풍파를 다 겪은 뒤 가슴엔 이슬 단지만 들고 가는 70년대 슬픈 군상들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해설가>김동원(사진)
약력
경북 영덕 출생.
1994년『문학세계』`시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1997년 제 1시집『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출간
2002년 제 2시집『구멍』출간
2004년 제 3시집『처녀와 바다』출간
2007년 동시집『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출간
2011년 시 에세이집『시, 낭송의 옷을 입다』출간
2014년 평론집『시에 미치다』출간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현, 한국시인협회, 대구문인협회원. 대구시인협회 이사.
『텃밭시인학교』시창작교실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