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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순 정치평론가 |
조반유리(造反有理). 모든 반항과 반란에는 나름대로 까닭이 있다는 뜻이다. 기존 체제에 반기를 들었던 홍위병들을 격려하는 마오쩌둥 주석의 이 한 마디는 문화대혁명(1966~76)의 암흑을 불러왔다. 마오 주석은 홍위병의 광기를 이용해 잃어가던 권력을 되찾았다. 이후 홍위병들이 통제범위를 벗어나자 군부를 이용해 이들을 모두 두메산골로 내쫓아 버렸다.
마오의 이런 정치적 술수를 대란대치(大亂大治)전략이라고 한다. 세상을 크게 흔들어 (일부러) 혼란을 초래하고, 혼란을 다스린다는 미명하에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해가는 전략이다. 마오의 대란대치 전략은 정치적 고비마다 빛을 발했다. 마오는 죽는 순간까지 황제와 같은 절대 권력을 휘둘렀다. 하지만 문화대혁명의 후과는 중국의 발전을 몇십 년 가로막은 것도 사실이다.
국기문란, 국가원수의 국정수행 마비, 부패한 기득권세력과 좌파세력이 현 정권을 식물정권으로 만들려는 의도. 듣기만 해도 섬뜩한 말들이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특별감찰 내용이 언론에 누설됐고,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우 수석을 검찰에 수사의뢰한 데 대한 청와대의 반응이다. 여당은 물론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검찰도 바싹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 와중에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조선일보 주필의 향응외유 의혹을 폭로하고 나섰다. 김진태 의원은 우병우 수석의 서울대 법대와 사법시험 1년 선배인 검사 출신이다. 정말 놀랄 정도로 자세한 내용과 사진들을 들고 나왔다. 그러면서도 정보의 출처를 밝히기는 곤란하다고 한다. 야당에서는 김 의원이 누군가의 ‘청부’에 따라 움직이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청와대는 이번 사태를 대통령의 통치권에 도전하는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조선일보 등 보수의 핵심들이 현 정권과 거리를 두면서 차기정권 만들기에 나선 것으로 파악하는 듯하다. 이를 배신이자 반역이라고 보는 것 같다. 반란의 조짐을 초기에 제압하지 않으면 아직도 1년 반의 임기가 남은 현 정부는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마저 감지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안타까운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2013년 정권 출범 후 거의 매년 늪에 빠져 허덕여왔다. 남북정상회담회의록 사초실종, 세월호 참사, 정윤회 문건 파동, 메르스 사태, 그리고 올해 4·13총선에서의 기록적 참패와 여소야대 정국의 출현. 일모도원(日暮途遠), 날은 어둑어둑 저물어가는데 갈 길은 아득히 먼 심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어떻게 진행됐는지를 곰곰이 살펴보면 국기문란이니 식물정권을 만들려는 불순한 의도로 치부하는 것은 자격지심에 불과하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이번 우병우 사태의 전말은 의외로 간단하다. 지난 3월 진경준 검사장(구속)의 126억원 주식대박의 진실이 드러나면서 우병우 민정수석의 인사검증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제기한 것이 단초다.
진경준-우병우 두 사람의 관계를 살피다 보니 튀어나온 것이 우 수석 처가 강남부동산 의혹이다. 마침 네이처리퍼블릭 정운호 회장과 관련한 최유정 변호사, 홍만표 변호사 등 서민들의 가슴을 찢은 사건이 줄줄이 이어졌다.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서민은 개·돼지’ 발언은 국민감정을 폭발 일보직전으로 몰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병우 수석을 둘러싼 여러 의혹이 제기되자 국민은 마음을 닫고 고개를 돌리고 있는 것이다.
여권은 지난 총선에서 질 수 없었던 선거에서 왜 졌는지 돌아봐야 한다. 야당이 분열된 상태에서 ‘진박 마케팅’ 등 교만한 마음으로 힘 자랑을 하다가 초유의 참패를 초래하지 않았던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극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주먹 자랑하듯 하면 여권의 분열과 국민의 외면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대란대치의 벼랑 끝 전술은 자칫 참혹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