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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덕 (여의도 정치미디어 그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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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화를 분석한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에 나오는 동양인의 심리분석에 따르면, 서양인은 기독교의 영향으로 하느님이 보고 있다는 양심에 따른 ‘원죄의식(guilty feeling)’이 있는 반면에 동양인은 남이 모르면 죄가 아니고 들켜서 부끄러운 ‘수치심(sense of shame)’만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슨 일만 터지면 “왜 나만 갖고 그래”이다. 너희들도 다 그런데 나만 걸려서 억울하다는 것으로 전두환 대통령부터 죽은 성완종 회장, 사의를 표명한 이완구 총리 또 앞으로 나올 잠재적 피해자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한국적 정서이다.
故성완종 회장이 죽으면서 폭로한 ‘돈질’ 리스트로 인해 정치판이 쑥대밭이 될 지경이다. 그런데 성회장을 알았던 사람들의 이구동성이 “나는 잘 모른다” 와 “특별한 관계가 아니었다” 등의 발 빼기와 선 긋기이다. 그 중에 압권은 이완구 총리인데, 그가 3천만 원을 보궐선거 때 받았는지의 여부가 문제가 아니라 지금은 그의 말 바꾸기와 거짓말에 대한 비난이 더 거세다. 사람이 당황 하면 거짓말도 하고 말을 번복하기도 하며, 보고 싶은 것만 보거나 기억하는 ‘선택적 인지’(selective cognition)’ 현상에 의해 실제 기억이 안 날수도 있다.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난 것은 민주당 선거사무소에 대한 도청행위가 아니라 이 사실을 은폐하려고 했던 행위와 그의 거짓말 때문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김대중 정부시절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옷 로비 사건 때 김태정 검찰총장이 검찰조사를 받게 된 부인에게 한 말이 걸작이다. “정색을 하고 무조건 부인해라”하는 것이 수사로 잔뼈가 굵은 검찰수장이 부인에게 가르쳐준 비법이다. 수사를 많이 받았거나 해본 사람들은 일단 무조건 부인하거나 ‘오리발’을 내미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경찰출신의 이 총리도 정색을 하고 무조건 부인한 것이 이제 하나하나 거짓으로 들어나며 여론의 뭇매를 맞는 것이다.
정치인은 원래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직업이다. 강이 없는데도 다리를 놓겠다고 허언(虛言)을 하는 것이 정치인이지만, 문제는 그 말의 동기(motivation)와 위기관리의 능력(risk management)이다. 플라톤은 일찍이 지도자의 사회적 조화를 위한 ‘선의의 거짓말(noble lie)’을 인정했고, 마키아벨리도 통치자는 “늑대의 마음으로 여우같이 간교하게 행동하라”고 주문했다. 정치는 이상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기초해야 하는 것이기에 어느 정도의 거짓말은 필요하고 공감도 하는 것이다.
지금도 유행하는 조항조의 노래 ‘거짓말’을 보면, “사랑했다는 그 말도 거짓말/돌아온다던 그 말도 거짓말/세상에 모든 거짓말 다해놓고.../이젠 더 이상 속아선 안되지/이젠 더 이상 믿어선 안되지/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아.../어떤 사랑으로 나의 용서에 답 하련지..,/내 곁에서 날 지켜준다는 말/이번 만큼은 변치 않길...” 유행가 속에 세상의 진실과 바램이 있는 것이다.
이번 사태로 인해 유력 정치인들의 품성과 위기관리 능력이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 까십처럼, 성회장의 호소를 들어주고 나름 애쓴 사람은 ‘의리남’, 원칙대로 조사받으라고 물리친 사람은 ‘비정남’이라고 구분해 쓰는 것은 언론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겠으나 언론의 질문공세에 대응하는 정치인들의 태도는 가히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다. 추미애 의원 같은 이는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니건만 지레 기자회견을 하여 루머를 퍼뜨리면 고소하겠다고 협박을 가하고, 충북의 노영민 의원은 자신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네티즌들을 고발했다고 본인의 트위터에 올리기까지 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까지 “나는 잘 모르는 일이고 특별한 관계도 아니다”며 한국정치나 대권에는 관심도 없고 여력도 없고, 퇴임 후는 손주들과 놀겠다 하였으니 그도 국제기구의 수장임에도 행태는 대개의 한국인과 다름이 없다.
선비는 언행(言行)이 태산만큼 무거워야 한다고 선인들은 당부했지만 정치인의 언행은 새털처럼 가볍고 촐싹대니 국민이 어찌 믿고 따를 것인가. 밀란 쿤테라가 말하는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아니라 “정치인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칸트가 말했듯이 “정직이 최선이다.(Honesty is the best policy)”